[취재수첩] 인사이동 거부하는 농협노조
전국 농협노조가 지난주 초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을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내달 초에는 전국 조합원이 여의도로 집결하는 대규모 상경 투쟁을 예고했다.

노조의 이 같은 극심한 반발은 농협중앙회가 지난달 ‘인사교류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국 농협에 보낸 때문이다. 중앙회는 공문에서 직원들이 한곳에서 근무한 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조합으로 이동시킬 것을 권고했다. 너무 오래 한곳에 머물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남달리 폐쇄적인 기업문화 탓에 사고가 잦다는 게 중앙회의 판단이다. 실제로 어처구니 없는 금융사고가 작년에도 적잖게 발생했다. 한 직원은 노인 고객의 신분증과 인감을 도용해 5년간 26억원의 거금을 빼돌렸다. 일부 농협에선 임의로 금리를 올리고 부당하게 이자를 떼다 잇따라 실형을 받았다.

금융가에서는 중앙회의 조치에 나름 타당성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부분 은행들이 이미 3년 안팎으로 직원들을 이동시키고 있기도 하다. 대규모 불법 대출이 얽힌 1982년의 이른바 ‘명성그룹 사태’가 5년 넘게 한곳에서 일한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난 이후 생겨난 관행이다.

노조 주장에도 귀담아들을 대목이 있다. 노조는 직원들이 개별 법인인 지역조합과 고용계약을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앙회가 사용자도 아닌데 지역조합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고하는 것일 뿐’이라는 경영진의 해명이 먹혀들 리 없다.

하지만 조합원 신분의 안정을 해치는 어떤 변화도 거부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편안하게 안주하겠다는 자세는 도태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국내외 금융시장 변화와 소비자 보호라는 시대적인 화두를 외면해서는 미래를 찾기 힘들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고객에게서 받은 돈이 200조원을 웃도는 농협은 조합원들만의 조직이 아니다. 고객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최우선 돼야 하는 이유다. 농협은 ‘고인 조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는 그 같은 인식을 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