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마평
총리나 장관 등 고위 관리가 임명될 때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게 하마평이다. 어제 내정된 감사원장이나 장관, 아직 검증 중인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도 그랬다. 공공기관장이나 기업 고위직 인사 관련 소문까지 차고 넘친다. 누가 어느 자리로 갈 거라는 둥, 어떤 자리에 오른 누가 어떤 스타일이라는 둥 세간의 평가를 단순 흥밋거리로만 볼 수는 없다.

내정자가 발표되면 곧장 프로필이라는 형태의 인물평도 뒤따른다. 모두가 선망하는 요직인 만큼 관심이 높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미디어의 인물평들은 대체로 덕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이 외유내강형이며 업무는 빈틈없이 추진하는 완벽주의자들이다. 궂은일에는 발벗고 앞장서는 의리파요, 업무추진에 박력이 넘치는 불도저형이거나, 부하들을 잘 포용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들이다.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수통’이니 ‘공안통’이니 하는 전직 평가부터 적극적인 성품으로 지휘통솔력이 뛰어나다는 두루뭉수리 평가까지 겹쳐진다. 요즘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두주불사형, 마당발, 소신파 등의 평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만 받아들이다가는 자칫 헛다리 짚기 십상이다.

이른바 두주불사형도 그렇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일처리보다 술자리에서 불콰한 얼굴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타입일 수도 있다. 시인묵객들에게는 미덕일지 모르나 국정을 책임지는 공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한때는 호쾌한 장부의 기개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쓰였지만, 공인의 술자리 실수가 잦은 걸 보면 앞뒤 안 맞는 ‘헛물평’인 셈이다.

원칙론자나 소신파라는 말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앞뒤가 꽉 막힌 답답형을 에둘러 표현한 수사학일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명확한 업무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대쪽인 것 같지만, 현실성도 없고 융통성도 없는 소통불가형 인물일 수도 있다. 마당발로 소문난 유명 인사는 온갖 지연과 학연 등의 인적 네트워크에 포획돼 정작 업무처리는 구렁이 담 넘듯 하는 하급 인물일 수도 있다. ‘적이 없다’는 말을 뒤집으면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뜻과도 통한다.

하마평이라는 용어가 상전을 기다리며 입방아 찧던 말잡이 하인들의 눈치놀음에서 유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명단에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어서 자가발전형 ‘셀프 하마평’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인사 때마다 등장하는 스테레오타입의 하마평을 거꾸로 해석해보는 것도 역발상 독법(讀法)의 하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