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규제도 피하자…'계열사 지도' 다시 그리는 삼성·현대차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가 17일 합병을 결의했다. 하이스코의 자동차강판(냉연) 사업 부문을 분할해 현대제철에 합치기로 했다. ▶본지 17일자 A1, 15면 참조

수년 전부터 거론돼온 양사 간 합병이 지난달 현대제철의 충남 당진 3고로가 준공되자 곧바로 현실화된 것이다.

삼성·현대차·LG·SK 등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등 사업 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사업 효율화를 꾀하는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취지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 조정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에 각종 규제까지 강화되자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그룹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철강사들의 전격 합병

현대제철은 하이스코의 당진과 순천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처음 쇳물부터 마지막 자동차강판까지 만들어내는 명실상부한 일관제철소로 거듭나게 됐다. 또 수익성이 높은 자동차강판 부문을 갖게 돼 11조원가량의 차입금 상환 부담을 덜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양사의 연구개발(R&D) 기능이 통합돼 첨단 자동차강판 개발 등이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스코는 강관과 차량 경량화, 철강재 가공·유통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양사 합병은 사업 필요성에 따라 이뤄졌다는 철강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부수 효과도 기대된다. 우선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이스코는 현대제철의 반제품을 받은 뒤 가공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해왔기 때문이다.

또 장기적으로 지배구조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합병 후 현대제철의 새로운 주요주주로 등장하게 돼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가 쉬워졌다는 분석이다. 가령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가진 합병 후 현대제철 주식을 기존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과 맞바꾸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

○규제 피하고 경영권 승계도 준비

삼성과 SK의 연이은 사업 조정도 규제 강화 등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은 지난달 23일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1조500억원에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하기로 했다. 나흘 뒤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SNS를 시스템통합(SI) 기업인 삼성SDS에 합병한다고 공시했다.

이를 통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55.6%인 삼성SNS는 삼성SDS에 합병돼 회사 자체가 사라진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인수하면 에버랜드의 내부거래 비중은 46.4%에서 30%대로 낮아진다. 외부 매출을 조금 더 늘려 내부거래 비중을 20%대로 낮추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SK도 지난 5월 중고차 매매업체인 SK엔카를 모회사인 SK C&C에 합병했다. 이렇게 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대주주인 SK C&C의 그룹 내부거래 비중은 64%대에서 46%대로 낮아진다.

계열사 간 합병으로 오너 일가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12월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 절차가 완료되면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은 8.81%에서 11.26%로 높아진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이 없지만 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다.

서욱진/정인설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