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보험사와 리펑 중국 前총리 딸의 비리
톈안먼 시위대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리펑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딸 리샤오린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사진) 등 중국 고위 관료들이 대거 연루된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0일(현지시간) 스위스의 대형 보험사가 2000년대 초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리샤오린 등에게 거액의 뇌물을 줬다는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가 미국 버지니아주 대법원에서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보험은 중국이 외국 회사들에 보험시장을 개방하기 4년 전인 2000년 당시 뇌물을 써 중국 최대 민간보험사인 신화보험의 지분을 인수했다. 리샤오린은 취리히보험과 중국 고위 관료를 잇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

리샤오린은 1995년 한 정부 행사에서 초등학교 친구였던 빌 자오 당시 중국 둥팡그룹 직원에게 “취리히보험이 중국 시장 진출에 흥미를 갖고 있다”며 “다리를 잘 놔주면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빌 자오는 장훙웨이 전 둥팡그룹 회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둥팡그룹은 부동산, 정보기술(IT) 제품 등 수많은 사업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 중 하나다. 취리히보험은 조세피난처인 바하마에 개설된 크레디트스위스 계좌로 1690만달러(약 178억원)를 송금했다. 이 돈은 장훙웨이와 샹화이청 전 중국 재정부장, 톈펑샨 전 토지자원부 장관 등 중국 고위 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들은 부동산 구입, 자녀 유학비 등으로 이 돈을 썼다.

‘뇌물의 힘’으로 취리히보험은 중국이 외국 보험사에 시장을 열기 전인 2000년 5100만위안(약 90억원)이라는 ‘푼돈’을 내고 신화보험의 지분 10%를 인수했다. 취리히보험은 2004년 4억3760만위안을 추가 투자해 20%의 지분을 더 매입했다. 이 회사는 이후 주식을 팔아 4억8500만파운드(약 8300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취리히보험은 지금도 신화보험의 주식 9.4%를 갖고 있는데, 지분 가치만 6억파운드에 이른다.

이런 내용은 장훙웨이가 둥팡그룹의 미국 법인 운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빌 자오를 버지니아 주 법원에 고발하고 이들이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텔레그래프는 “톈안먼 사태 당시 민중을 탄압하던 고위 관료들이 권력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열매’를 따먹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