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반평균 혼자 올린 전교1등처럼 슈퍼리치가 만든 '富의 착시'
2007년 6월21일 뉴욕 맨해튼의 포시즌 레스토랑에서 소설 ‘매니(The Manny)’의 출간 기념 파티가 열렸다. 작가는 거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공동설립자 피터 페터슨의 딸 홀리 페터슨. 블랙스톤을 통해 2조원대의 갑부가 된 피터 페터슨이 딸의 데뷔 소설 출간을 축하하는 파티에는 수많은 갑부가 몰려들었다. 나중에 홀리는 이날 파티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들은 전부 다 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말을 꺼냈어요. 전용 비행기를 사는 대신 ‘비행기 공동소유권’을 제공하는 ‘넷제트’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집이 네 채가 필요할 때 그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돈을 좀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였죠.”

그러면서 홀리는 “지금 어퍼이스트사이트 지역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있다. 마흔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헤지펀드를 통해 1년에 2000만~3000만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전했다.

[책마을] 반평균 혼자 올린 전교1등처럼 슈퍼리치가 만든 '富의 착시'
《플루토크라트》는 세계적인 학술평가기관 ‘톰슨로이터스’의 편집장이자 산업전문가인 크리스티아 프리랜드가 들려주는 억만장자들의 이야기다. 플루토크라트는 그리스어로 ‘부(富)’를 뜻하는 ‘플루토스(plutos)’와 권력을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부유층’을 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위 1% 혹은 0.1%의 최상층에 주목한다. 세계 경제의 혁명적인 변화의 물결을 타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슈퍼리치들이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끼리끼리 뭉치고 일반 시민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영화 ‘설국열차’의 맨 앞칸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20년 이상 이들 글로벌 슈퍼리치를 심층 취재해온 저자는 빈부격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 심해졌고, 글로벌 신흥갑부들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념대립이나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면 소득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던 쿠즈네츠곡선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됐다고 단언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최상층은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리 떨어져 나갔다는 것.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소득불평등의 심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됐다. 세계화와 기술혁명으로 선진국은 2차 도금시대, 개발도상국은 1차 도금시대를 누리는 ‘쌍둥이 도금시대’가 이어졌기 때문. 도금시대란 마크 트웨인의 동명 풍자소설에서 유래한 말로, 남북전쟁 후 미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갑부들이 금빛 찬란한 삶을 즐기는 동안 대다수 국민은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트웨인은 이런 말로 풍자했다.

이 때문에 최상층 편중현상을 고려하지 않고는 전반적인 경제성장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몇몇 뛰어난 학생들 때문에 평균점수가 높게 나온 학급처럼, 최상층에서 급증한 부는 경제현상에 대한 이해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가령 2009~2010년 미국의 전체 소득은 2.3% 늘어났다. 하지만 99% 미국인의 소득은 0.2% 증가하는 데 그쳤고, 상위 1%의 소득증가율은 11.6%를 기록했다. 대다수 미국인이 경제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라는 얘기다.

플루토크라트는 자국 내에선 99%와 섞이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 부자들과는 공동체를 이뤄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러시아 갑부들이 영국의 축구클럽과 신문사를 사들이고 멕시코 통신 재벌이 ‘뉴욕타임스’의 두 번째 주주로 올라서는 식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베네치아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으라고 충고한다. 베네치아는 새로운 인물과 자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시스템 ‘코멘다’를 기반으로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기득권자들은 이후 ‘황금의 책’이라는 귀족 명부와 함께 지배계급을 폐쇄적인 집단으로 만들려다 사회적 유동성을 고갈시켰고, 마침내 몰락했다. 그런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