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피고인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합니다.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법정구속하겠습니다. 피고인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

“저는 선지급 지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그 일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도망가진 않겠습니다.”

27일 SK그룹 횡령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재판부의 질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변했다.

최 부회장이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터였다. 원심에서 집행유예도 아닌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에 대해서도 SK그룹 임직원과 변호인단은 감형을 기대했으나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바뀌었어도 이 사건에서는 형량이 낮아질 이유가 없다”고 못박으며 원심 형량을 유지했다.

최 회장은 두 시간이 넘는 선고 시간 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변호인단도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었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고가 끝나자 취재진과 방청객들이 두 형제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방청석 앞쪽으로 모여들었다. 인파가 한꺼번에 모여들자 법원 경위들은 “이쪽으로는 넘어올 수 없다”며 방청석과 증인석 사이의 울타리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황급히 제지했다.

최 회장은 경위들에 이끌려 법정을 나가며 방청석을 돌아봤다. 최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은 방청석 오른쪽 뒤편에 앉아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최 회장이 퇴장한 뒤 최 부회장도 격앙돼 빨개진 얼굴로 뒤따라 퇴장했다.

SK그룹 임직원들은 일어선 채로 두 형제가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부는 인정사실, 양형 이유 등을 두 시간 가까이 얘기한 뒤 마지막에 유·무죄 판단과 형량에 대해 설명했다. 유죄에 대한 판단은 선고 초반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재판부가 “예비적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미리 밝히고 선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최 부회장에 대한 법정구속, 최 회장에 대한 양형 유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SK그룹 측 변호인단은 “피고인 등과 상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