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스탄불서 싹 틔운 문화강국 가능성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지이며,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2일까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개최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코리아 문화돌풍’을 일으켰다.

‘길, 만남, 그리고 동행’이라는 주제로, 한국 전통문화 중심으로 열린 이번 엑스포 23일간의 행사기간 중 관람객 수는 해외 한국문화전 사상 최대인 480만명에 달했다. 세계 최고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아야소피아 앞 광장 등 이스탄불 중심에서 행사가 펼쳐진 덕분에 터키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까지 몰려들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이스탄불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경주가 만나서 ‘공동 문화엑스포’를 성공시킨 것은 ‘문화야말로 인류 사회의 화평과 번영의 새 코드’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화공감을 바탕으로 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다면, 이는 바로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문화 모델’이 될 것이다.

개막 5개월 전부터 경주-이스탄불 고대 실크로드를 한국의 젊은이들이 국산 자동차(현대 싼타페)로 탐사하는 대장정을 성사시키고, 이스탄불의 상징탑인 갈라타 타워에 기념비를 세운 것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개막식에서 “경주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고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끝 지점이다. 이 두 지역이 문화로 만나 새로운 실크로드 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역사 속의 고대 실크로드가 한국 주도로 21세기 ‘디지털 실크로드’로 재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엑스포는 대한민국의 뿌리와 문화 원형질을 담은 국보급 문화콘텐츠와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한류’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자리이기도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한국의 소리 길’, 신라를 소재로 한 뮤지컬 ‘플라잉’과 ‘신국의 땅 신라’, 13개 시군의 민속공연, 태권도 시범 등 거의 모든 공연이 관람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다.

KBS의 K팝 콘서트에는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 불가리아, 그리스, 프랑스, 독일 등 인근 국가에서 9000여명의 한류 팬이 몰려와 열광했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문화융성시대 경주의 찬란한 문화가 이스탄불에서 다시 꽃피어 나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큰 행사였다”고 말했다. 터키 국영방송 TRT의 젬 귤테킨 PD는 “세계의 역사문화박물관인 이스탄불을 한국의 한 지역이 한 달간 점령해 종합문화제를 성공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며, 터키는 물론 유럽과 중동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과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번 문화엑스포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국제 무대로 나간 첫 사례로 이른바 ‘세방화(세계화+지방화)의 문화모델’이다. 파급 효과도 컸다. ‘세계일류 한국상품전’에는 한국 중소·중견기업 99개사, 터키 최대 가전업체 아르첼릭을 비롯한 250여개 터키 기업들, 중동 동유럽 등 인근 국가 바이어업체 120개사가 참가했다. 모두 1300여건의 비즈니스 상담도 진행됐다.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은 “고품격 한국문화를 동·서양 문화의 접경지인 이스탄불에 종합적으로 소개해 한국문화가 아랍과 아시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번 엑스포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직·간접적 생산유발효과는 3450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540억원, 고용유발효과는 64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한국과 터키를 번갈아 오가면서 문화축제와 심포지엄 등 문화예술 교류의 장을 상설화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것도 ‘신개념 문화동맹’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한국과 터키 양국간의 문화 교류를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 문화융성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행사였다.

김관용 < 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 조직위원장·경북도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