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이적표현물을 판매했더라도 연구·생계 목적이란 게 입증되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자신이 운영하던 인터넷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이적표현물을 판매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로 기소된 김모씨(58)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6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해당 서적은 절판된 서적이라 이 분야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수요층이 존재, 일반 중고서적보다 높은 가격이었던 점 등으로 미뤄 김씨가 영리·생계 목적으로 판매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서적을 연구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김씨의 주장도 쉽사리 배척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인터넷 물품거래 현실을 고려할 때 김씨가 해당 서적을 팔면서 구매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은 점을 이례적인 일이라 볼 수 없다”며 “김씨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2003년 4월부터 인터넷 중고서적 사이트를 운영하던 김씨는 ≪북한의 사상≫, ≪주체사상의 형성과정≫ 등 북한 주체사상을 찬양·고무하는 내용의 서적 85종·140권을 판매·소지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2004년 2월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7년 8월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점을 고려, 2011년 3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논문을 작성하는데 해당 서적 중 일부를 학술 목적으로 인용한 점,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비·생활비를 벌려고 해당 서적을 판매해 온 점 등으로 미뤄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할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학술·영리 목적으로 해당 서적을 판매·취득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사상·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이적표현물인 서적을 소지·판매한 김씨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커서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지난 2월 징역6월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