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구텐버그', 2인 20역으로 꾸미는 역동적 무대
“오늘 밤 이 자리에는 거물급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버드) “지금 여러분 옆자리에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다면, 바로 그분들이 십중팔구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인 거죠.”(더그)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구텐버그’(사진)에서 관객은 뮤지컬 제작자 또는 투자자가 된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두 청년 버드와 더그가 함께 창작한 대작 뮤지컬의 첫 시연회에 초청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다.

시연회 형식은 무대 세트와 의상을 갖추지 않고 최소한의 소품만 놓고 보여주는 ‘대본(리딩) 공연’이다. 두 사람이 준비한 공연은 일반적인 대본 공연과 다르다. 극장을 빌리는 것만도 빠듯한 이들에게 여러 배우를 쓸 만한 여력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20여명의 배역을 다 연기해야 한다. 여기서 관객의 상상을 돕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동원된다. 대표적인 것이 배역이 적힌 수십 개의 야구모자다.

더그와 버그는 시연 전 갖가지 ‘무대 약속’을 설명한다. 모자는 두 사람을 그 모자에 적힌 배역으로 만들어주는 도구다. 제자리걸음을 하면 회전무대가 돈다. 두 사람을 돕는 유일한 조력자인 피아노 한 대와 연주자는 수십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2인 20역의 극중극 ‘구텐버그’가 드디어 시작된다. 두 사람은 20여개의 모자를 쉴새없이 바꿔 쓰면서 구텐버그, 취객, 가슴이 빵빵한 여인, 사악한 수도승, 조수, 꽃파는 소녀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두 사람은 중간중간 ‘더그’와 ‘버그’의 모자를 쓰고 그들의 인생이야기와 뮤지컬을 향한 열정, 꿈 등을 들려준다. 극중극에서 문맹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구텐버그의 꿈과 포개 놓는다. 이뿐만 아니다. 두 사람은 은근히 ‘제작자’인 관객들을 가르치려 든다. 극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뮤지컬의 기본 요소와 상투적 수법들을 알려준다. 기존 뮤지컬에 대한 비판과 조롱도 섞인다.

미국 전통 ‘2인 스탠딩 코미디’ 쇼와 ‘대본 공연’을 절묘하게 결합해 기발하고 참신한 형식의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잘 짜인 대본(원작 앤서니 킹, 스콧 브라운, 각색 김동연)을 잘 소화해낸 정상훈(더그)과 장현덕(버드)의 열연은 기립박수를 받을 만하다. 넘치는 재능과 끼뿐 아니라 엄청난 연습량과 땀이 느껴진다. 공연은 오는 11월10일까지, 4만4000~5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