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은 정작 동인의 거두 허엽의 적자(嫡子)다. 그럼에도 당시 천대받던 서자, 승려들과 자주 어울렸고, 광해군 5년(1613년) 역모사건인 ‘칠서지옥(七庶之獄·계축옥사)’에 연루된 7명의 서자들과도 교류했다. 허균의 호인 교산(蛟山)의 교(蛟)가 이무기를 뜻하는 것도 흥미롭다.
유교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양반 자식이라도 첩의 소생이면 모두 서얼(庶孼)로 차별했다. 모친이 양인이면 서자, 천민이면 얼자였다. 서얼의 자손도 대대로 서얼이었다. 고려나 명나라에도 없던 차별이다. 그 배경에는 서얼 출신 정도전이 있다. 정적 정도전을 제거한 태종은 1514년 서얼금고(禁錮)법을 제정, 서얼의 관직 등용을 제한했다.
뜻을 펴지 못한 서얼들은 자연스레 비주류 학문인 실학으로 기울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이 서얼 출신이다. 정조는 이들을 아꼈지만 규장각 검서관 같은 하급관리로밖에 쓰지 못했다. ‘패관잡기’의 저자 어숙권, 시조 ‘태산가’를 쓴 양사언 등도 서출이었다. 서얼금고법은 380년 뒤인 갑오개혁(1894년)에 가서야 철폐됐다.
오늘날 민법에서 혼외 자녀는 ‘혼인 외의 출생자’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일제시대만 해도 서자(부친이 인지한 자식)와 사생아(인지하지 못한 자식)를 구분했다. 몇 해 전 배우 손지창이 병역비리 루머에 휘말리자 “사생아라서 (당시엔) 입대 불가였다”고 가슴 아픈 해명을 한 적도 있다.
혼외 자녀는 ‘부정(不貞)의 열매’인 데다 재산배분과 직결되기에 어느 문화권에서나 차별적 존재였다. 영어로 사생아를 뜻하는 ‘bastard’는 욕설로 쓰인다. 일본에선 혼외 자녀의 상속재산을 적자의 절반으로 한다는 민법 규정이 최근에야 위헌 결정이 났다.
천재나 유명인사 중에 혼외 자녀가 많은 것도 역설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체사레 보르자, 에라스뮈스, 정복왕 윌리엄, 히틀러, 빌리 브란트, 에바 페론이 모두 사생아였다. 오프라 윈프리나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단군, 주몽, 원효대사에다 공자, 진시황도 서출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살았다”고 했다. 출생의 콤플렉스가 오히려 스스로 더 큰 족적을 남기려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최근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 자녀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한창이다. 진실은 밝히더라도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11살짜리 소년은 구김없이 잘 컸으면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