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버틴 전두환 일가 "1703억 자진 납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10일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모두 자진납부하기로 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확정 판결이 나온 지 16년 만이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자진 납부로 1703억원 상당의 재산을 확보했지만 이미 드러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1703억원 상당 자진납부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관에서 가족 대표로 대국민 사죄문을 발표하며 미납 추징금을 모두 내겠다고 밝혔다.

오후 2시58분께 서류봉투를 들고 도착한 그는 취재진 앞에 서서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사과문을 적은 A4용지를 꺼내 읽으며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가족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부친은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당국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고 말씀하셨고 저희도 그 뜻에 부응하고자 했으나 저희의 부족함과 현실적 난관이 있어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국씨는 이미 압류된 전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 정원과 경기 오산 땅, 경기 연천 허브빌리지 등의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모친 이순자 씨 명의로 된 자택 본채도 자진납부키로 했다.

남은 추징금은 전 전 대통령 자녀 등 일가 친척이 나눠 납부한다. 재국씨는 검찰이 압류하지 않은 서초동 시공사 사옥 3필지, 북플러스 주식과 경남 합천군 소재 선산(21만평), 개인 소장 미술품 50여점 등 재산 558억원을 낸다. 차남 재용씨는 500억원 상당의 경남 양산 부지와 본인 명의의 서초동 시공사 사옥 1필지 등 560억원을 내기로 했다. 효선씨는 경기 안양시 관양동 부지(근저당 제외 시 20억원 상당)를 내놓기로 했다. 삼남 재만씨는 본인 명의의 서울 한남동 신원플라자 빌딩과 부인 명의의 연희동 자택 별채 등 200억원가량을 부담할 예정이다. 재만씨의 장인인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금융자산으로 275억원 상당을 분납하기로 했다.

앞서 900억원가량의 재산을 압류했던 검찰은 이에 따라 미납추징금 1672억원을 웃도는 1703억원 상당의 자산을 확보하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 자산을 먼저 처분한 후 나머지는 공매를 통해 추징금을 확보하고 남는 금액은 돌려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사죄문 낭독 후 검찰에 추징금 납부 계획서와 단계적 이행각서를 제출한 재국씨는 오후 5시10분께 나와 “검찰에 성실히 답변했다. 추징금이 완납될 때까지 가족 모두가 협력하겠다”는 취지로 짤막하게 말한 뒤 귀가했다.

◆‘전 재산 29만원’이라더니 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버티던 전 전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 이후 16년 만에 추징금을 완납한 것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따른 압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재산 목록 심리를 받으며 “예금만 29만원 있을 뿐 차명 재산은 없다”며 줄곧 추징금 납부를 미뤄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환수 시효를 2020년 10월까지로 연장하고, 당사자가 버티면 그 자녀들로부터 추징할 수 있도록 한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별법 개정안’(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앞서 지난 5월 출범한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지난 7월 연희동 자택과 전씨 일가 사업체 및 거주지를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을 시작으로 총 60여곳을 9회에 걸쳐 압수수색하고 주변인들을 잇따라 조사하며 압박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전 전 대통령은 처남인 이창석 씨가 구속기소되고 최근 차남인 재용씨까지 검찰에 소환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자 ‘자진납부’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이 최대 1조원에 달해 자진납부를 하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검찰은 추징금 전액 환수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 등과 협의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한편 이미 드러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정소람/김선주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