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레트 "예술가의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
미국 뉴욕타임스가 천재라고 극찬한 이스라엘 대표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에트가르 케레트(46·사진)가 소설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문학동네)의 한국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단편 36편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들은 35개국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9일 만난 작가는 자신의 문학·예술론과 이스라엘 창업 시스템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소개했다. 그는 이번 소설집에 대해 “과거엔 반항적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였다면 이번엔 중산층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소설들을 썼던 9년 간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새 아파트를 사 대출금을 갚는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점점 성장해갔다는 것. 기존 독자들은 예술가가 보수화되는 걸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예술가로서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자신의 변치 않는 팬이 되는 것”이라며 “70살이 돼서도 20대 때와 같은 주제를 얘기하는 건 오히려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영화인이기도 한 그는 영화 등 콘텐츠 산업에서의 문학의 역할을 묻자 장르 간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문학이든 영화든 예술엔 위계질서가 없습니다. 영화화된다고 해서 문학이 훼손되는 건 아니예요.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칵테일 같은 것이죠.”

이스라엘의 창업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이 이스라엘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등 많은 협력이 있는 걸 알고 있다”며 “이스라엘 창업 시스템이 강한 건 역사적으로 이어 온 유대인들의 독특한 사고방식 덕분”이라고 했다.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유럽에 속해 살아갔지만 동시에 개별적 정체성을 지켰고, 이런 이중적 사고가 항상 회의하는 혁신적 사고의 원천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이스라엘은 완성된 국가가 아닌 만큼 혼돈스럽고 무정부적인 요소가 있다”며 “이 때문에 사회적 위계질서가 확립되지 않았고 젊은이들도 솔직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개방성이 있는 것도 혁신의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혼란은 창업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중 어떤 사회가 좋은지는 모르는 거죠(웃음).”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