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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를 위한 미술산책] 색채와 형태의 조화 추구…"그림의 목적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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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12>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
    [CEO를 위한 미술산책] 색채와 형태의 조화 추구…"그림의 목적은 위안이다"
    두 여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배경의 큼직한 야자수 문양으로 보아 아마도 장소는 남국의 카페 같다. 한 여인은 기타를 치고 있고 다른 한 여인은 그 연주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 이완된 모습은 보는 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안겨준다. 그러나 감상자는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그것의 내용보다는 형태와 색채의 전체적인 어울림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앙리 마티스(1869~1954)가 1939년에 그린 ‘음악’이라는 작품은 형태와 색채의 조화를 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면을 보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대각선을 그리며 배치된 두 여인이 형태와 색채를 매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먼저 연주를 듣고 있는 왼쪽 여인의 다리와 오른쪽 여인의 기타는 동일한 사선 위에 놓여 있다. 왼쪽 여인은 노란색 옷을 입고 있고 다리는 오렌지빛인데 그 색감은 오른쪽 여인이 들고 있는 기타에서 반복된다. 기타 공명통의 윗부분은 노란색이고 측면은 오렌지빛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여인의 청색 옷은 왼쪽 여인의 노란색 의상과 대조돼 두 여인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유하며 조화로운 어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왼쪽 여인의 아래로 늘어트린 왼쪽 팔은 오른쪽 여인의 다리와 평행을 그리고 있고 두 사람의 오른쪽 팔은 유사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두 여인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때로는 같은 음을 내고 때론 높낮이가 다른 음을 내기도 하면서 관객에게 조화로운 하모니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마티스는 마치 작곡가가 음악을 작곡하듯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마티스는 원래 과격한 표현주의자였다. 그는 색채의 자유를 선언한 고갱과 반 고흐의 정신을 이어받아 야수파(Fauvisme)를 결성, 색채 표현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몰고 나갔다. 1905년 그가 친구인 앙드레 드랭을 비롯해 조르주 브라크, 모리스 드 블라맹크와 함께 살롱도톤에서 작품을 선보였을 때 비평가 루이 보셀은 “도나텔로(르네상스기의 조각가)가 야수들에 포위됐다”고 혹평했다. 당시 전시실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조각 작품이 함께 전시됐는데 과격한 그들의 조형적 실험을 야수에 비교한 것이다.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에서 얼굴은 푸른색으로, 머리는 붉은색으로 그려 색채의 고유성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오죽하면 한 비평가가 “대중의 얼굴에 물감통을 내던졌다”고 비난했을까. 그러나 마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이 과격한 실험을 그만두고 색채의 조화에 매진하게 된다. 주위에서 그 배경을 묻자 “마냥 미쳐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라이벌 피카소가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실험해 나간 데 반해 마티스는 야수파의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양식을 다듬어나간다. 그는 아이들의 그림처럼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한편 색채와 형태의 음악적 조화를 추구한다. 그림의 장식물로서의 기능 또한 잊지 않았다. 그의 그런 의도는 “구성이란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장식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라고 한 말에 잘 드러나 있다.

    마티스는 그런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길 바랐다.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히고 순수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그림, 그래서 지식인뿐만 아니라 하찮은 노동자와 샐러리맨에게도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창조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었다.

    그러나 마티스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초기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형태와 색채의 고정관념을 뒤엎은 그의 의도를 관객들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러시아인, 미국인 등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프랑스가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내세우는 마티스의 중요한 초기 작품은 대부분 해외에 소장돼 있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색채와 형태의 조화 추구…"그림의 목적은 위안이다"
    피카소가 미술 전통의 과격한 ‘파괴자’였던 데 비해 마티스는 스러져가는 전통을 일으켜 세워 새롭게 변용하려 한 ‘건설자’였다. 마티스는 단 한 번도 전통적 형태감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 미술가들은 마티스의 안정감보다는 피카소의 과격한 혁신 쪽에 손을 들어줬다. 새로운 미술을 기치로 내건 ‘피카소의 아이들’의 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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