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전 금감원장
권혁세 전 금감원장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언제까지 우리나라의 ‘캐시카우’로 외환보유고를 늘려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언제까지 삼성과 현대에 기대고 매달려야 할까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도 독일처럼 강한 중소·중견을 많이 키워야 합니다. 그런 기업을 많이 만들어 내려면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이 모교인 서울대 경영학과 강단에 섰다. 가을 학기에 개설된 3학점짜리 ‘재무특강’을 5일 시작했다.

이날 첫 강의에서 권 전 원장은 “독일은 중소·중견기업이 탄탄하기 때문에 어떤 경제위기나 재정위기가 와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청년 실업률도 최저수준이다”며 “독일에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을 많이 보유한 데는 은행과 기업이 오랫 동안 거래하면서 꾸준히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권 전 원장은 이와 달리 국내 금융권엔 여전히 ‘비올때 우산을 빼앗는’ 관행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은행들은 기업이 잘 될때는 돈을 빌려가라고 하다가도 조금만 어려워지면 회수하지 않느냐”며 “우리 금융시스템도 독일처럼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전 원장은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우리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좀처럼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여러 통계들이 한국이 일본과 유사하게 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 걱정”이라며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달리 역동적이고 포용성이 큰 만큼 희망을 가져도 된다. 여러분이 그렇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만 표퓰리즘 성격의 법안이 양산되는데는 큰 우려를 나타냈다. 권 전 원장은 “정치쪽에서 포퓰리즘 법안이 활개를 치고, 정작 필요한 것들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모습을 볼 때는 ‘우리가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키아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일본 기업이 우리 기업에게 추월 당했듯이 우리도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퇴임한 권 전 원장은 그동안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내달초 출간될 ‘경제에세이’ 집필하는데 시간을 쏟았다고 했다. 그는 “고시 공부할 때처럼 하루에 7~8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썼다”며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세 시간 투자하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필을 위해 경제 금융 철학 등 관련 서적을 40권 이상 읽었다고 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