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겔라 프랑스 하바스그룹 부회장이 지난 22일 부산국제광고제 기간에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 걸린 대형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국제광고제조직위원회 제공
자크 시겔라 프랑스 하바스그룹 부회장이 지난 22일 부산국제광고제 기간에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 걸린 대형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국제광고제조직위원회 제공
“불황일수록 광고는 더 과감해져야 합니다. 경기가 안 좋으면 광고인들 스스로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실패 위험을 떠안는 창의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난 22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광고제의 심사위원장으로 한국을 찾은 자크 시겔라 프랑스 하바스그룹 부회장(80)은 “사람들이 힘겨워할 때 허를 찔러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광고인의 역할”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6위의 광고회사 하바스그룹의 광고 제작을 총괄하는 시겔라 부회장은 혁신적 광고를 통해 ‘루이비통’ ‘에비앙’ ‘시트로앵’ 등이 글로벌 명품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프랑수아 미테랑,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을 책임졌던 ‘광고계 킹 메이커’이기도 하다. 50세를 넘으면 대부분 은퇴하는 한국 광고인과 달리 여든의 나이에도 현업에서 뛰고 있다.

칸 국제광고제 심사를 맡고 있는 그는 “20년 전만 해도 칸에서 한국 광고의 크리에이티브(창의성)는 미미했지만 최근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올해 심사에서는 출품작 150편 중 처음으로 한국 작품에 최고 점수를 줬다”고 했다.

시겔라 부회장은 “올해 칸 국제광고제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광고의 주도권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이라며 “아시아의 광고 중심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한국 기업의 역동성은 어느 나라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피터 슈라이어 같은 유명 디자이너를 데려와 디자인을 변화시키고, 그 감각을 광고로 풀어내는 통합적 활동이 돋보인다는 것.

그는 “최고위 경영진의 판단 아래 전사적으로 이뤄지는 노력은 30년 전 광고를 맡았을 때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 소니를 연상시킨다”며 “중국이나 인도는 ‘크리에이티브 허브’가 되기엔 역량이 부족하고, 일본은 전성기가 한 번 지났다”고 말했다.

시겔라 부회장은 “유럽에서 광고 역량이 가장 뛰어난 국가가 벨기에인 것처럼 단순히 국가의 크기가 광고의 힘을 결정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광고산업의 최대 현안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질문에도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시겔라 부회장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한국 정부의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이 정책이 ‘글로벌 브랜드 육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명 글로벌 기업들은 삼성의 제일기획, 현대차의 이노션처럼 그룹 계열사를 통해 광고를 하진 않죠. 하지만 특정 광고회사와 장기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습니다. 한 광고회사가 수십년간 일종의 특권을 갖고 광고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상황과 비슷하죠.”

시겔라 부회장은 “루이비통 광고를 47년, 시트로앵을 45년째 하고 있다”며 “광고인의 창의력은 단발성 스폿 광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얼마나 굳건한 파트너십을 맺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광고회사의 독점적 관계를 문제 삼기보다 브랜드를 얼마나 오랜 기간 충실히 관리해왔느냐를 평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 함께 제일기획, 이노션 같은 한국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는 눈에 띄게 발전했다”며 “이들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는 건 잘 살고 있는 부부를 이혼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부산=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