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광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재료연구단장이 연구실에서 ‘몸 속에서 녹는 금속’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KIST 제공
석현광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재료연구단장이 연구실에서 ‘몸 속에서 녹는 금속’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KIST 제공
소말리아 해적에게 붙잡혔다 구출된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전 선장. 그는 지난 4월 오른쪽 다리뼈에 고정한 금속 고정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1년5개월 만에 아주대병원에 재입원했다. 뼈가 다 붙어 고정물이 없어도 되는 상황에서 이물감이 느껴져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금속 고정물을 제거하기 위해 2차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어질 전망이다. 몸 속에서 녹는 금속을 상용화하는 데 돌파구가 될 연구가 한국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생체재료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석현광 단장이다.

19일 서울 하월곡동 KIST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몸 속에서 녹는 금속이 실제 의료에 쓰이기 위해서는 강도가 높으면서 뼈가 다 회복될 때까지 충분히 체내에 남아 있을 정도로 분해 속도가 느려야 한다”며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합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8월호에 실렸다.

○몸 속에서 녹는 금속 개발

지금 뼈를 고정시키는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는 금속은 타이타늄이다. 가볍고 단단하며 인체에 무해하다. 그러나 몸 속에 그대로 두면 뼈에 전달돼야 할 무게와 힘을 금속물이 대신 받아 주변의 뼈와 근육이 약해질 수 있다. 석 단장은 “제거 수술은 주변에 새로 생겨난 혈관을 잘라내고 금속물을 끄집어내야 해 상당히 까다롭다”며 “이 때문에 몸 속에서 녹는 금속을 개발하는 게 요즘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몸 속에서 녹는 금속을 만들기 위해 마그네슘(Mg)·칼슘(Ca)·아연(Zn) 합금을 이용했다. 이미 몸 속에 들어 있어 분해돼 흡수되더라도 안전한 원소들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그네슘을 이용한 녹는 금속 연구를 해 왔지만 몸 속에서 너무 빨리 분해된다는 점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그네슘에 제2, 제3의 원소를 넣어야 강도가 높아지는데 분해 속도도 같이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연구단에서는 마그네슘 입자 구조물에 소량의 칼슘과 아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하는 실험을 하던 끝에 강도가 높으면서 분해 속도가 느린 합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분해 속도가 종전에 비해 1만분의 1까지 줄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금속 고정물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6개월에서 2년이면 몸 속에서 다 녹아 없어진다”고 말했다.

현재 아주대병원에서 손가락 골절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번 연구 컨소시엄을 같이 구성한 의료기기 전문업체 유앤아이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어 상용화도 앞두고 있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는 말했다. 타이타늄과 비교해 강도가 4분의 1 정도여서 다리뼈처럼 많은 부하를 받는 부분에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제는 강도를 더 높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급성장하는 바이오메디컬 시장

석 단장이 바이오메디컬 분야에 뛰어든 것은 불과 6~7년밖에 되지 않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그는 나노구조 코팅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을 개발해 이전하기도 했다. 그는 “나노 코팅이나 반도체 등은 국책연구소가 아니더라도 이미 기업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가 없을까 생각하다 바이오메디컬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는 아직 이 분야를 연구하는 기반이 없었지만 시장이 커지고 있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바이오메디컬에서는 점유율이 0%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라며 “특히 의료기구에서는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나 몸 속을 들여다보는 내시경 소재 등을 대부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생체 분해성 금속에서는 한국이 경쟁 국가보다 최소 5~6년 이상 앞서 있다는 게 석 단장의 진단이다. 그는 “생체 분해성 금속의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며 “몸에서 녹는 핀, 스텐트 등으로 한 해 수십조원의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