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차원서 접근…3국 협력체제 강화 도모
對일본 시각에 미세 변화 속 우경화 '용인' 우려도

과거사와 영토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3국의 갈등구도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선은 복잡미묘하다.

'힘의 우위'를 앞세워 수십년 간 역내 질서를 좌우해온 미국이지만 3국 관계에 구조적 장애가 되는 이 싸움에는 선뜻 끼어들지도,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지도 않는 모호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 판도를 겨냥한 'G2'(주요 2개국) 차원의 외교안보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對)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키워드가 중심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미국의 역내 패권을 유지하려는 고도의 셈법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도 그 연장선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내의 두 우방인 한·일 간 갈등은 미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뉴스다.

대내외적 악재 속에서 힘과 위상이 약화된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고 리더십을 재건하기 위한 결정적 동력이 바로 한·미·일 삼각협력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지난달 취임회견 때 한·미 동맹을 지역안정의 '린치핀(linchpin·구심점)',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이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미국은 일단 양국 간 긴장과 갈등을 자제시키면서 공통의 가치와 전략적 이해를 토대로 협력을 강화해나가도록 하는데 외교력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8월 독도 영유권 분쟁이 불거졌을 당시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한일분쟁은 미국으로서는 불편한 일"이라며 "양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같다.

평화적으로 협의를 통해 해결하라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사안의 성격상 갈등의 골이 쉽게 메워지지 않고 동맹의 근간을 지속적으로 갉아먹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연구원은 연합뉴스와 서면인터뷰에서 "양국의 과거사 갈등은 국민정서의 문제로 힘든 외교적 도전"이라며 "곪아 터질 경우 지역안보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과거사 이슈의 특성상 양국의 화해를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공통의 위협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공동대응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글러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부회장은 "동북아 안보지형을 고려할 때 과거사와 영토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이 갈등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에 맞지 않는다"며 "미국으로선 양쪽이 긴장을 관리하도록 독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일본을 바라보는 워싱턴 조야의 기류에 미세하나마 변화가 일고 있는 점이다.

일본의 지속적 과거사 부정과 '독도 도발'에 동맹의 축이 흔들리자 미국으로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한반도담당 보좌관은 이달 초 한 강연에서 "미국은 양국의 협력을 독려할 수밖에 없지만 성노예 같은 사안에 대해선 진실을 지지하고 있다"며 일본정부를 간접 비판했다.

한·일 갈등과는 달리 중·일 갈등은 미국에 대중국 견제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을 놓고 미국은 사실상 일본을 두둔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중국의 팽창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난 1월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행정권을 훼손하려는 모든 일방적 행위를 반대한다"며 사실상 중국에 경고를 보낸 것은 미국의 전략적 현주소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지나치게 포위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칫 지역안정이라는 큰 틀의 판이 깨지고 경제교류와 지역안정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센카쿠 주변의 군사적 배치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역내 불안정으로 이어질 휘발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이 자칫 일본의 보수우경화 움직임을 '용인'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다.

이는 인접국인 한국과 중국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팔 부회장은 "미국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일본이 주변국과의 긴장을 고조하지 않는 속도와 범위내에서 개정을 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한·중·일 3국의 갈등구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역내 주도권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큰 틀의 판이 깨지지 않도록 지역안정을 꾀하는 고도의 '상황관리'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이 동맹이라는 틀을 넘어 얼마나 냉정한 전략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