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뉴욕 가는 반가사유상
한자를 제대로 안 배운 세대들에게 가부좌(跏趺坐)는 어려운 말일지 모른다. 한자로만 써두면 읽기조차 힘들 수 있다. ‘절의 불상(佛像)처럼 앉는 방식’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금방 ‘아! 그걸…’이라고 반응할 것이다. 종교를 떠나 한국인에게 가부좌는 정말 익숙한 자세다. 가부좌의 본래 말이 결(結)가부좌이거니와 반만, 즉 한쪽 발만 반대쪽에 올려 앉는 방식이 반(半)가부좌다. 결이든, 반이든 가부좌는 불가의 전통적 수행 몸가짐이자, 해탈에 이른 경지의 상징이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미래불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을 미륵보살이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게 대승불교 교리의 한 축이다. 이 미륵불이 한없이 깊고 그윽한 생각에 빠져 있다. 그냥 상념이 아니라 아스라한 그 어떤 경지의 사유(思惟)다. 중생 구제의 한없는 염원일까. 영겁의 미래에 대한 지혜의 응시일까. 미소인 듯, 깨달음의 절대경지인 듯 범부들은 저 신비의 표정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런 보살상인데 소재는 금동(金銅)이다. 도금 내지는 금박 입힌 구리다. 11자의 한자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명명된 배경이다. 신라의 미소, 신라의 예술과 종교를 상징하는 이 걸작은 국보가운데 하나다. 같은 모습으로 완벽하게 나란히 남아 있는 반가사유의 두 불상이 바로 국보 78호와 83호다.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VIP 자리서 수많은 방문객을 천년의 미소로 맞는다.

제작연대가 조금 더 늦어 7~8세기로 추정되는 국보 83호 불상은 특히 일본의 국보 1호 목조(木造)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원형이라는 연구도 있다. 일본의 이 국보가 한반도땅 적송으로 제작된 사실부터가 흥미롭다. 일본이 요 근래 역사에 대해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지만 그 옛적의 교류는 기록에 남은 것 이상이었던 것 같다.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양국의 국보는 어느 쪽이 먼저인가를 논하기 전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인류의 대문화유산이다. 반가사유상에 대해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실로 완전히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 없이 표현돼 있다”고 극찬하지 않았던가.

그런 83호 국보의 뉴욕행이 확정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10월 신라특별전을 위한 나들이다. 안전을 우려해 문화재청이 반대했으나 메트로폴리탄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안전을 거듭 다짐하고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면서 번복됐다. 읍소였는지, 협박이었는지, 국보 83호 없이는 특별전이 어렵다는 메트로폴리탄 측 성명까지 나왔고 이게 청와대로 바로 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렵게 결정된 만큼 메트로폴리탄 제일의 명당 자리에서 고대 한국의 품격을 뭇 세계인들에게 잘 보여주면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