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소쩍새가 울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 전후가 되곤 한다. 기나긴 장마에 돌보지 못한 마당은 풀밭이 돼 있었다. 날을 잡아 풀을 뽑아낼 생각을 했지만, 어느새 엄두를 못 낼 정도로 풀이 자라 마당을 뒤덮었다. 묵정밭인지 공터인지 모를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풀냄새가 진동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도 이웃집 아저씨가 예초기로 풀을 베어준 적이 있었다. 접이식 의자를 내와 마당에 앉았다. 잣나무 숲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수십 년째 잊고 지낸 그녀가 떠올랐다. 정처 없이 마을 주변을 떠돌던 그녀는 얼굴이 까맸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있었고 등 뒤에는 포대기에 싼 베개 크기의 뭔가를 업고 다녔다. 보따리를 끌러보거나 포대기에 싼 등 뒤의 보물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길옆 풀밭에서 잠을 잘 때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보따리와 등에 진 보물단지를 확인하려고 할 땐 경우가 달랐다. 그녀는 장정 몇 명이 달려들어도 거뜬히 그들을 물리쳤다. 사람들마다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그녀는 산에서 살았다. 나는 그녀를 마을에서보다 산에서 자주 봤다. 그녀는 투구봉 산자락 밑 돌밭 근처 잔솔밭 아래서 살았다. 돌을 주어다 침대 크기로 만든 방과 그 옆에 돌을 둘러 만든 변소가 있었다. 그녀는 돌베개를 베고 누워 있거나 두 무릎을 팔로 둘러 손깍지를 낀 채 돌밭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 주위엔 들꽃이 몇 송이 피어 있곤 했는데, 나는 그 들꽃들이 그녀를 지켜보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흔들림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웃고만 있는 그녀와 들꽃들은 잘 어울리는 한 다스의 쌍둥이였다.

그녀는 한겨울에도 거기서 살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그녀는, 어떤 기막힌 기억을 더듬느라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나 도토리, 정금, 보리수, 칡, 도라지, 잔대, 가재, 머루, 다래, 솔잎을 주워 먹거나 캐 먹거나 뜯어먹거나 잡아먹거나 하면서, 그녀는 거기서 살았다.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산에서 살았다. 웃음을 잊지 않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막 가을걷이를 끝낸 무렵이었다. 하늘엔 먹구름들이 급히 어디론가 몰려가기 바빴고 그 속도로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나락을 말리고 널따란 묘지에 돌을 눌러 논 검은 비닐포장 모서리를 잡고, 새끼줄을 떨어지지 않게 포장과 몸에 묶고 야산으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발을 구르기만 하면 어딘가로 날아갈 수 있었다. 자, 하나, 둘, 셋! 그러나 누구도 발을 구르지 못했다. 그녀가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녀의 얼굴에 엷게 흐르던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밝혀 낼 방법도 없었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몰라도, 그녀의 이름은 ‘똥산이’였다. 그저 산에서 먹고 똥을 싼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녀 앞에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 그녀가 산에 있을 때 그렇게 불렀다.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신작로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포대기 뒤로 팔을 돌려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듯 포대기 속 베개 크기의 뭔가를 흔들어 주고 있었다.

“아가, 아가, 울지 마라.”

그녀가 무심코 흘리고 지나간 말이었다. 그녀에게 갓난아기가 있었다. 그녀는 웃을 줄밖에 몰라 시집에서 버림받고 떠돌았다. 그녀는 항시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다녔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정신을 차린 동안, 그녀는 배신감과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럴 때, 그녀의 얼굴은 무섭도록 서러웠다.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앞산 뒷산에서 번갈아 가며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 포대기 속 아기를 달래듯, 앞산에서 뒷산에서 소쩍새가 밤을 지새워 울고 있었다.

이윤학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