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대출 등을 미끼로 개통된 스마트폰의 유심(USIM·범용 가입자 식별 모듈)칩을 사들인 뒤 소액결제로 산 상품권 등을 되팔아 157억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수천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은 월 25만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개인정보를 넘겨 휴대폰 단말기값과 요금 등 수백만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컴퓨터 등 사용사기와 범죄수익은닉 등의 혐의로 김모씨(49) 등 4명을 구속하고 정모씨(35) 등 2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1일 발표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최근까지 전국 휴대폰 유통업자로부터 타인의 개인정보와 스마트폰 유심칩을 사들인 뒤 자신들이 보유한 중고 휴대폰에 유심칩을 장착하고 이를 활용, 인터넷 게임머니 및 온라인 상품권을 소액결제 형태로 매입했다. 이후 시가보다 10~15% 정도 싼 가격으로 중고 매매 사이트에서 상품을 되팔아 총 157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 일당이 사들인 대부분의 유심칩은 신용불량자들이 소액대출을 받기 위해 개인정보를 넘겨 불법 개통된 스마트폰에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스마트폰 가입자인 피해자들은 한 달에 25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는 말에 스마트폰 가입에 동의했고 3개월 뒤 해당 통신사로부터 단말기 가격 등 최대 640만원의 청구고지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피해자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개인정보를 제공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 김모씨(53·신정동)는 “지인이 신용등급만 되면 누구나 스마트폰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통신 3사에 모두 가입하면 총 50만원 가까이 나온다며 신용조회를 위해 신분증을 요구했다”며 “내 명의로 스마트폰이 가입됐고 3개월 뒤 500만원 이상의 고지서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확보한 5000여개에 달하는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인터넷 아이디가 범행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커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범죄를 주도한 김씨가 사용한 차명계좌만 20개에 달했다. 사들인 유심칩은 KTX, 고속버스, 퀵서비스 등을 이용해 4~5단계 배송 과정을 거치는 등 추적을 피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세청 등에 공조를 요청해 이들에게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대출광고 문자를 보고 개통에 동의할 경우 이처럼 수백만원 상당의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서민들의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