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 중 ‘리비아 예언자’의 습작(왼쪽)과 원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 중 ‘리비아 예언자’의 습작(왼쪽)과 원화.
선으로 형태 그리고 색채로 감성 표현…조화 이뤄야 공감 얻어
옷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색상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색상만 좋고 디자인이 신통치 않은 옷을 선뜻 사지는 않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색채와 디자인은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구매 포인트다. 고객의 지갑은 양자가 조화를 이룰 때 열린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형태와 색채가 조화를 이뤘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전문지식이 없는 감상자라도 “잘 그렸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형태와 색채는 별개의 요소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앞뒤의 관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먼저 화필을 들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밑그림(소묘)을 그린다. 밑그림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선(線)이다. 화가는 그렇게 여러 차례 밑그림을 그려 원하는 형태를 얻고 거기에 색채를 입힘으로써 그림을 마무리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화가들은 선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을 회화의 제1 원리로 여겼고 색채는 부차적인 요소로 생각했다.

피렌체 출신이었던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리비아 예언자’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예언자는 원래 여성인데 미켈란젤로는 놀랍게도 그의 몸을 강인한 남성적 육체로 묘사했다.

평소 건장한 남성의 육체야말로 숭고함을 드러내는 데 적당하다고 생각한 미켈란젤로는 여성 예언자를 그릴 때마저 그러한 원칙을 고수했다. 등을 보이며 뒤쪽으로 방향을 튼 예언자의 상체는 인체의 해부학적 도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육 구조를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세밀하게 포착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습작 소묘를 보면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인체를 탐구하고 이를 정확히 종이 위에 옮기려고 고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그의 의도는 습작을 토대로 완성한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색채가 더해지긴 했지만 감상자의 시선을 자극하는 것은 색채가 아니라 선을 바탕으로 한 다이내믹한 형태감이다.

미켈란젤로는 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베네치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선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빛과 색채,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는 감성적 분위기였다. 조르조네, 조반니 벨리니, 티치아노, 파올로 베로네세 등 이곳 출신 화가들이 한결같이 색채 효과에 매달린 것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베네치아 화파의 선구자인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보면 형태보다는 암울한 색조의 불길한 분위기가 화폭을 지배한다. 피렌체 화가들이 정확한 사실적 재현을 목표로 한 데 비해 베네치아 화가들은 느낌, 감성의 표현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선이 대체로 화가의 감정적 이입을 절제하고 대상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중요한 요소인 데 비해(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색채는 화가가 의식하든 안하든 간에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색채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붉은색은 인간 심리에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색으로 보는 이에게 기쁨, 열정, 따뜻함, 감성 혹은 성적 욕망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동시에 분노와 폭력의 색채이기도 하다. 푸른색 계통의 색은 차갑거나 시원한 느낌을 주며 녹색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색채가 지닌 상징성도 감상자가 작품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테면 검은색은 죽음, 노란색은 질투 혹은 배신, 청색은 충성과 정결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화가들은 때때로 이런 색채의 상징성을 활용하여 그림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한층 강화시킨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의 화가들은 이런 색채의 상징성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고갱을 비롯한 상징주의자들과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파 화가들은 색채를 오로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객은 오늘도 여전히 색채의 아름다움을 그림의 호불호를 따지는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 색채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측면은 시대를 초월해 면면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 그것은 우리의 감성과 맞닿은 시각의 최전선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