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윌리스·제타존스가 결혼 축하케이크 마련해줘"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데,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 기분이 묘해져요. 아버지는 제게 영화를 가르쳐준 분이었죠. 브루스 윌리스 등 존경하던 대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것도 영광스럽고요.”

배우 이병헌(사진)은 1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18일부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레드-더 레전드’(감독 딘 패리소트)에서 주연을 맡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미국과 영국, 러시아의 정보 요원들이 은퇴 후 10년 만에 다시 뭉쳐 비밀병기의 재가동을 막는 작전에 들어가는 액션 코미디다. 이씨는 윌리스를 죽이기 위해 고용된 최고의 킬러 ‘한’으로 등장한다. 그는 아시아 버전 자막에서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메리 루이스파커에 이어 네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캐서린 제타존스, 헬렌 미렌, 안소니 홉킨스보다도 앞서 있다.

“20대 팬들은 홉킨스나 말코비치를 모를 수 있겠지만 30대 이상에게는 전설적인 배우들이죠. 그런 배우들과 지난해 9월부터 12월 말까지 몬트리올, 파리, 런던 등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촬영하니까 참 신기하더군요. 대배우들이 대기실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경이롭기까지 했죠. 그 장면 자체가 제겐 영화였어요. 제가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식 예법으로 먼저 인사한 뒤 그들 옆에 앉았더니 나중에는 그분들이 저와 같이 인사를 하더군요. 문화라는 게 이렇게 전파된다는 걸 느꼈어요.”

캐스팅 제의를 받고 코미디여서 한편으로는 망설여지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코미디 연기를 하려면 현지인의 정서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발차기로 윌리스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찍을 땐 실수로 그의 몸을 실제로 때리거나 상처를 입힐까봐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이씨가 한국어로 욕설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원래 영어 대사를 그의 아이디어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제 배역은 일종의 허당 킬러예요. 윌리스를 죽이는 임무를 맡았지만 탈취당한 비행기에 더 집착하니까요. 하지만 웃음 가운데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이죠. 단순하지 않은 캐릭터여서 좋았어요.”

대배우들과도 친해졌다. 윌리스는 이씨를 무술의 달인으로 타인에게 소개할 정도다. 촬영 기간에 가장 가까워진 배우는 헬렌 미렌이다. 미렌은 누나처럼 따뜻하게 대해줬고, 제타존스와는 섹시미를 담은 화보를 함께 찍어 발간했다. 다음달 10일 배우 이민정과의 결혼에 대한 축하인사도 받았다.

“LA시사회를 마친 뒤 뒤풀이 때 윌리스가 케이크를 준비해 촛불을 끄는 이벤트를 해줬어요. 그 자리에 있던 미렌, 말코비치, 제타존스 등이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하더군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