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타자기의 부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박물관에는 생전에 그가 쓰던 타자기가 놓여 있다. 타자기로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인 그는 1883년 발표한 ‘미시시피강의 추억’을 이 타자기로 완성했다. 타자기 회사 레밍턴사가 그에게 타자로 원고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한때 인쇄소 수습공이었던 그는 밤새 활판인쇄기 소리처럼 요란한 타자음을 내며 타닥타닥 글자를 쳐나갔다. 강의 안전수역을 나타내는 ‘수심 두 길(마크 트웨인)’이라는 뜻의 필명은 이 작품 덕에 더 유명해졌다. 그는 자동식 타자기 사업에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가 파산하는 아픔도 겪었다.

최초의 타자기는 1714년 영국의 헨리 밀에 의해 발명됐지만 상용화는 그로부터 150여년 뒤에 이뤄졌다. 1868년 미국 인쇄기술자 겸 신문편집인 크리스토퍼 숄스가 잉크 리본을 이용한 지금의 타자기를 만들었고, 그 특허를 사들인 총기회사 레밍턴이 1874년부터 제대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마크 트웨인이 쓴 것도 레밍턴 타자기였다.

사업자들의 문서 수요가 급증할수록 타자기 수요도 늘어났다. 수많은 발명가들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베스트셀러 ‘생활의 발견’을 쓴 린위탕(林語堂·임어당)도 한자 타자기 개발에 청춘을 바쳐 특허까지 얻었지만 결국 성공하진 못했다.

한글 타자기는 1914년 재미동포 이원익이 영문 타자기에 한글 활자를 붙여 고안한 게 처음이다. 1949년 의학박사 공병우가 세 벌식 타자기를 개발했지만 두 벌식에 밀려 대중화엔 실패했다. 1961년 정부가 공문서를 한글 타자기로 작성하기 시작했고, 1963년에는 실업과 교과목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타자기는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론 예쁜 타이피스트들도 덩달아 사라졌다.

그런 타자기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주요 공직자와 국가자료 등의 유출을 막기 위해 컴퓨터 대신 타자기로 기밀문서를 작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국가정보국의 개인정보 비밀수집 등이 사실로 드러나자 인터넷 유출 위험이 없는 종이기록만 남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 활동에 협조하고 사실상 공모했다는 정황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야후도 당국의 정보수집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긴 인터넷의 역사가 처음부터 군사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첨단 정보망을 뚫는 해커들보다 구형 타자기를 치는 타이피스트들의 재부상이 화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완전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쉿! 타자기 앞에서도 조심 또 조심을.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