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FTA 사인만 하고 안내는 '뒷전'
“대문자로 작성된 서류가 아니어서 자유무역협정(FTA) 혜택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지난 7일 인천공항 세관. 네덜란드에 다녀온 한 관광객에게 관세청 직원은 관세 20%를 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지에서 가방을 사면서 유럽연합(EU)에서 생산된 제품이란 증명 서류를 받아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필기체나 대문자가 아니어서다.

해외여행객은 400달러 이상 제품을 구입하면 초과분에 20%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EU 등 한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만든 제품에는 10%의 세금만 내면 된다. 1000달러 이하 제품은 영수증만 있으면 자동으로 세금을 깎아 준다. 그 이상은 추가 증빙서류가 필요하다. 이 제품이 EU에서 만들어졌다는 내용의 문구를 영수증에 적어 와야 한다.

관세청이 만든 FTA포털에 ‘영수증에 원산지 증명서를 받아 와야 한다’는 문구가 나오지만, 포털 안내만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큰 코를 다친다. 포털엔 ‘이 제품은 (나라)의 특혜원산지 제품임을 신고한다’는 문구를 영수증에 받아 오도록 돼 있다. 이때 반드시 프린트를 하거나, 잉크를 이용한 스탬프를 찍어야 하고, 손으로 쓸 경우에는 대문자나 필기체로 써야 한다는 내용은 포탈엔 없다. 협정문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문구가 필요한 것을 알아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를 써줘야 하는 유럽 내 매장들이 규정을 잘 알지 못해서다. 심지어는 세금을 받는 한국 세관직원조차 1000달러 이상 제품을 1000유로 이상 제품으로 혼동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복잡하다.

세관에서 정확한 내용을 고지받은 뒤 원산지 증명을 해도 이미 낸 세금은 환급받을 수 없다. 한 번에 서류를 정확히 구비하지 않으면 안 내도 되는 세금을 10% 더 내야 하는 것이다.

관세청은 손을 놓고 있다. 인천공항 세관의 한 직원은 “양국이 서명한 협정문에 따른 것”이라며 “문구를 써주고 말고는 EU에서 자체 규정을 만들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더라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정확히 고지하는 것은 관세청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EU에 불편을 해소하도록 요청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들의 몫이다.

강영연 국제부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