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전문가들은 ‘마(魔)의 10%’란 표현을 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표현이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정해진 보험료율은 월 소득의 9%였다. 경과 규정에 따라 1988년 3%로 시작해 1998년 9%가 됐다. 이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2003년부터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계속 두 자릿수로 올리자는 의견을 내놨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올해도 제도발전위원회는 인상안을 다수안으로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성사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분위기다.

연금발전委 '국민연금 올려야' 다수안 채택했지만…복지부 생각은

○“후세 부담 덜어줘야”

제도발전위원회에서는 인상하자는 의견과 동결하자는 의견이 6 대 4 정도로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 전문가들이 보험료 인상을 주장한 이유는 연금 고갈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가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지금처럼 9%의 보험료율을 유지하면 2043년이면 국민연금 지급액이 보험료보다 많아져 적자를 기록한다. 이어 2060년엔 적립금이 완전 고갈된다. 고갈을 막지 못하면 국민연금은 고스란히 후대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인상론의 근거다.

인상 목표로 거론된 보험료율은 13~14%다. 이는 지난 3월 재정추계위원회가 발표한 장기 전망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 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48%로 올리면 2083년에도 한 해 연금지급액 대비 5배(적립배율) 정도의 적립금을 유지할 수 있다. 14.11%로 올리면 보험료가 지급액보다 많아져 적자를 영구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인상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위원들 간에 보험료율 목표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험료율을 올리고 지급액은 동결하는 방안에 대한 거센 반발을 감안한 것이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 따라 소득 대비 수령 연금액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40%로 낮아졌다. 노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를 그대로 놔둔 채 보험료율만 올리는 안을 내놓을 경우 가입자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위원회는 대신 적립배율을 목표치로 내놓기로 했다. 시기별로 일정 수준의 적립 목표를 정해 놓고 이에 따라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 미국 일본 등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난색

제도발전위원회가 최종안을 확정하면 보건복지부는 이를 기초로 정부안을 만들어야 한다. 보험료율을 올리려면 8월께 복지부 안을 만들어 당정 협의 등을 거쳐 10월 정기국회에 상정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보험료율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현재 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가 기초연금 도입이기 때문이다. 내년 7월로 다가온 기초연금 도입도 쉽지 않은데 보험료율 인상으로 ‘전선’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실적인 재정 여건을 감안해 기초연금 대상자 범위를 당초 대선 공약이었던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서 대폭 줄인다는 방침이다. 때문에 국회에서 한바탕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실적인 경제 여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올릴 경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부는 그러나 위원회의 다른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위원회는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면 연금 수급권을 박탈하는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현재 월 398만원인 국민연금 소득 상한선을 올리는 방안 등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