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배경의 노트르담 사원이 부분 확대 모니터를 통해 새롭게 다가오고 궐기하는 민중의 함성이 들려온다. 반 고흐의 명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저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스크린에서는 강렬한 붓의 터치가 벌레처럼 꿈틀댄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9월22일까지 열리는 ‘디지털 명화 오디세이-시크릿 뮤지엄’전은 서양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대표적 명화를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으로 촬영해 보여주는 ‘원화 없는 명화전’이다. 2010년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이 삼성전자 프랑스법인 후원으로 열었던 ‘레벨라시옹, 회화 속 디지털 오디세이’전의 한국 투어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 색, 빛, 시간, 원근법, 마티에르 등 회화를 구성하는 중심 요소를 8개 부문으로 나눠 명화의 세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고해상도 모니터, 대형 멀티스크린, 홀로그램, 3차원(3D) 멀티스크린 등 삼성전자가 후원한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명화의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그림 속 분위기를 재현한 배경음까지 곁들여 친숙한 명화를 음미하는 또 다른 방법을 맛보게 해준다.

이 전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종전 디지털 미술관의 지평을 넓힌 신개념의 전시라는 점이다. 종전의 온라인 미술관은 주로 미술관 측이 새로운 전시 출품작의 일부를 미리 가상공간에 소개해 관객을 현실공간으로 유도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시도됐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디지털 미술관을 구체적인 전시공간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PC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미술관은 원본 작품의 실제 크기를 체험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세부 관찰도 쉽지 않다. 이에 비해 이번 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양자의 장점을 취한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또 기존 디지털 미술관의 일방적 보여주기와 달리 관객이 현장에서 명화와 다양한 방식으로 교감할 수 있게 해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대에도 친근한 전시 방식인 것으로 평가된다.

명화 이미지에 다각도로 접근해 관객의 체험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2006년 파리 루브르박물관이 일본의 다이 니혼 프린팅사와 공동으로 추진한 ‘루브르-DNP 뮤지엄 랩’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이뤄진 바 있다.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에 흩어진 명화를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 미세한 부분까지 탐색할 수 있게 한 ‘구글 아트 프로젝트’ 역시 디지털 미술관의 진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복제 이미지를 전시하는 데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원화 표면의 질감이나 원화가 놓였던 공간의 운치, 오랜 세월의 땟국 같은 것은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