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차 드라기 효과, 버냉키 쇼크 잠재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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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총재 긴급 구세주 역할…가용 정책수단 제약돼 미봉책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이번에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구세주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출구전략 추진 시사 발언에 따른 ‘버냉키 쇼크’로 심하게 흔들리던 세계 증권시장은 드라기 총재가 “유럽 경기를 회복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말한 뒤 일단은 안정을 찾고 있다. 초기 효과로만 본다면 그 어느 때보다 강해 지속 가능성에 기대를 갖게 한다.
올 들어 ‘아베노믹스’, 출구전략 등과 같은 굵직한 현안이 많아 뒷전에 물러나 있었지만 유럽 위기는 계속돼 왔다. 연초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 집권당의 부패 문제가 불거졌다. 유로화 강세 방지를 위한 시장 개입과 그리스 지원 금융 방식, 즉 구제금융(bail out)과 손실부담(bail in)을 놓고 벌였던 독일과 다른 회원국 간 갈등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더 악화됐다. 대부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졌다. 디플레이션이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었음을 뜻한다. 유럽 위기 최후 보루 역할을 맡아왔던 프랑스 경제는 침체한 지 오래됐다. 이제는 독일 경제마저 녹록지 않다.
특히 실업률은 유럽연합(EU)이 고용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수준으로까지 악화했다. 지난달 유로존 실업률은 12%대를 기록했다. 5%대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을 제외하면 15%를 웃도는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은 25%대로 치솟았다. 그리스는 60%,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각각 56%대로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2년 전 영국 런던 폭동 사태에 이어 유럽 청년들이 다시 사회 저항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 ‘신(新)러다이트 운동’이다. 19세기 초 기계를 파괴하자는 러다이트 운동에 빗대 청년 실업의 주범인 첨단기술을 파괴하자는 움직임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을 이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신러다이트 운동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경계선을 긋고 사유화 또는 유료화하자는 신인클로저 운동, 선거법에 규정돼 있는 연령 제한과 관계없이 증강현실 산업 이용자들의 정치 참정권을 늘리자는 신차티스트 운동,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자는 신브나로드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고용 사정은 의외로 빨리 개선되고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증시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 악재다. 이른바 ‘경제 정상화 역설’이다. 벌써부터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때문에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절묘했고, ‘드라기 효과’라고 불릴 만큼 세계 증시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에서는 출구전략을 언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상대책을 발언해 선진 중앙은행 간 ‘엇박자’, 통화정책 간 ‘디커플링(차별화)’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순환 국면이 다를 때는 공조보다 부조화가 더 좋은 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드라기 효과’가 ‘버냉키 쇼크’를 잠재울 만큼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2 드라기 패키지’라 불리는 이번 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금리정책에서 마이너스 예금제를 도입하고, 유동성 조절정책에서는 무제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OMT)을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비상대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강도가 약하다. 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재정 정책은 재정 통합이 안 돼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서는 ‘독일판 마셜 플랜’밖에 없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회원국의 반대가 없다고 한다면 드라기 총재가 자신의 의도를 가장 폼 나게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재정적자 화폐화’다. 재정적자 보전과 경기부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ECB가 발권력을 동원해 사주는 방식이다. 국채 매력이 떨어져 민간의 투자 수요가 없을 때 정책 당국자가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대안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유럽 통합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 이 방식은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재정을 많이 지출하는 국가일수록 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메워준다면 회원국 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심해져 유럽 통합은 깨질 수밖에 없다. 또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반대하고 있어서 이 방안이 구상된다고 하더라도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만큼 올 하반기에는 출구전략 추진 여부와 함께 유럽 위기가 세계 증시에 양대 ‘테일 리스크(tail risk·꼬리위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테일 리스크란 정규분포의 양쪽 끝 부분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주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변수를 말한다. 올 하반기는 위험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올 들어 ‘아베노믹스’, 출구전략 등과 같은 굵직한 현안이 많아 뒷전에 물러나 있었지만 유럽 위기는 계속돼 왔다. 연초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 집권당의 부패 문제가 불거졌다. 유로화 강세 방지를 위한 시장 개입과 그리스 지원 금융 방식, 즉 구제금융(bail out)과 손실부담(bail in)을 놓고 벌였던 독일과 다른 회원국 간 갈등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더 악화됐다. 대부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졌다. 디플레이션이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었음을 뜻한다. 유럽 위기 최후 보루 역할을 맡아왔던 프랑스 경제는 침체한 지 오래됐다. 이제는 독일 경제마저 녹록지 않다.
특히 실업률은 유럽연합(EU)이 고용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고 수준으로까지 악화했다. 지난달 유로존 실업률은 12%대를 기록했다. 5%대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을 제외하면 15%를 웃도는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은 25%대로 치솟았다. 그리스는 60%,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각각 56%대로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2년 전 영국 런던 폭동 사태에 이어 유럽 청년들이 다시 사회 저항 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 ‘신(新)러다이트 운동’이다. 19세기 초 기계를 파괴하자는 러다이트 운동에 빗대 청년 실업의 주범인 첨단기술을 파괴하자는 움직임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을 이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신러다이트 운동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경계선을 긋고 사유화 또는 유료화하자는 신인클로저 운동, 선거법에 규정돼 있는 연령 제한과 관계없이 증강현실 산업 이용자들의 정치 참정권을 늘리자는 신차티스트 운동,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자는 신브나로드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고용 사정은 의외로 빨리 개선되고 있다. 액면 그대로 해석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증시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 악재다. 이른바 ‘경제 정상화 역설’이다. 벌써부터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때문에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절묘했고, ‘드라기 효과’라고 불릴 만큼 세계 증시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에서는 출구전략을 언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상대책을 발언해 선진 중앙은행 간 ‘엇박자’, 통화정책 간 ‘디커플링(차별화)’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순환 국면이 다를 때는 공조보다 부조화가 더 좋은 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드라기 효과’가 ‘버냉키 쇼크’를 잠재울 만큼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2 드라기 패키지’라 불리는 이번 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금리정책에서 마이너스 예금제를 도입하고, 유동성 조절정책에서는 무제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OMT)을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 골자다. 비상대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강도가 약하다. 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재정 정책은 재정 통합이 안 돼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서는 ‘독일판 마셜 플랜’밖에 없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회원국의 반대가 없다고 한다면 드라기 총재가 자신의 의도를 가장 폼 나게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재정적자 화폐화’다. 재정적자 보전과 경기부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ECB가 발권력을 동원해 사주는 방식이다. 국채 매력이 떨어져 민간의 투자 수요가 없을 때 정책 당국자가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대안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유럽 통합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 이 방식은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재정을 많이 지출하는 국가일수록 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메워준다면 회원국 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심해져 유럽 통합은 깨질 수밖에 없다. 또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반대하고 있어서 이 방안이 구상된다고 하더라도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만큼 올 하반기에는 출구전략 추진 여부와 함께 유럽 위기가 세계 증시에 양대 ‘테일 리스크(tail risk·꼬리위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테일 리스크란 정규분포의 양쪽 끝 부분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주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변수를 말한다. 올 하반기는 위험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