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마트 '파견 압력' 매년 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백화점,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판촉사원 불법 파견 요청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매년 서면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납품업체에 대한 부당한 판촉사원 파견 요청 행위를 제한하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지만, 납품업체들이 거래 단절을 우려해 제보나 신고를 꺼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종업원 파견 요건 까다로워진다

송정원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4일 “그동안 대형 유통업체들의 불법 행위가 있었지만 납품업체들이 거래처 단절 등의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며 “올해부터 전체 6만여개 납품업체 중 1만개를 대상으로 판촉사원 파견 실태조사를 하고 위법 상황이 적발되면 바로 유통업체를 직권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에는 지난달 공정위가 발표한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표준거래계약서 이행 여부도 포함돼 있어 매장 인테리어비, TV홈쇼핑 프로그램 제작비 불법 전가 행위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날 실태조사에 적용할 구체적인 위법 기준을 담은 ‘대규모 유통업에서 납품업자 등의 종업원 파견 및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현행 대규모 유통업법의 규정이 모호해 구체적인 위법 행위를 따지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대형 유통업체는 파견사원의 인건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납품업체에 상품 매입 단가를 깎거나 판매장려금과 광고비를 추가로 요구할 수 없다. 또 대형 유통업체가 구두, 이메일 등으로 먼저 파견 요청을 한 이후 납품업체가 자발적으로 파견요청서를 제출해도 불법으로 간주된다.

납품업체의 직원 파견은 납품업체가 자발적으로 하거나 유통업체가 판촉사원의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모두 허용된다. 이외에도 특수한 판매기법이나 능력을 지닌 숙련된 종업원에 한해 파견이 가능하다. 해당 분야에서 최소 1년 이상 종사한 경험이 있는 인력으로, 소믈리에, 바리스타, 전자제품 전문가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형 유통업체는 또한 판촉사원 파견 절차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선 서면 약정을 종업원 파견 전에 해야 한다. 1주일 이내의 단기 판촉 행사를 할 경우에도 파견을 먼저 받고 사후에 약정을 맺으면 처벌받는다. 서면 약정을 불명확하게 하는 것도 법 위반이 된다.

◆유통업계 “고용·매출 위축 우려”

유통업계에서는 앞으로 납품업체 직원을 파견받기가 어려워져 매출과 고용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대부분의 판촉사원은 협력업체가 자발적으로 파견한 것이어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도 파견 요건이 까다로워져 영업에 지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은 판촉사원이 있고 없고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판촉사원이 소비자를 상대로 상품을 설명하면서 구매를 유도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가공식품은 협력업체에서 나와 시식코너 하나만 운영해도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며 “파견 직원이 줄면 대형마트와 협력업체 모두 매출과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파견 직원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각 브랜드와 제품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직원 파견이 어려워지면 협력업체 중에서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인지도가 낮은 중소업체들에는 대형마트에 직원을 파견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라며 “직원 파견이 제한되면 인지도가 높은 대기업 제품만 잘 팔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김주완/유승호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