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독일식 모델서 배우자
‘모두를 위한 풍요와 사회정의 구현.’ 마치 진보정당의 구호처럼 들리지만 독일의 보수 정당인 기민당이 내건 메시지다. 라인강 기적의 주역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제안했고, 기민당이 이를 자신의 정당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그 결과 유럽에서 가장 낮은 4%의 실업률과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3%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또한 경상수지 1위 국가로 중국을 제치고 수출을 통해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나라기도 하다.

2013년 한국의 가장 큰 시대적 과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 해결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스칸디나비아식 모델이 거론되지만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인구가 적을 뿐만 아니라 자원부국이다. 우리와 비교하기에 적합한 나라는 독일이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을 겪었고, 분단을 경험했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경제 기적을 만들었다. 인구 규모나 천연자원이 없는 점도 비슷하다.

독일은 시대의 문제점과 결핍을 차근차근 극복해왔다. 특히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 본(Bonn) 대학에서 공부한 이후 30년 넘게 독일 전문가로 활동한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넥스트 이코노미》에서 경제민주화로 성장과 분배에 성공한 독일식 경제 모델이 미래 한국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은 왜 경제민주화에 천착했을까.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발휘하면 결과적으로 국민 경제 생산성과 효율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경험한 독일은 무산계급이 많으면 사회가 위험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따라서 개인의 부 형성을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독일의 강한 국제 경쟁력은 수많은 ‘히든 챔피언’ 기업에서 나온다. 세계 2500여개 히든 챔피언 중 1500여개가 독일 기업이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은 23곳, 독일의 65분의 1에 불과하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독일이 수출을 통해 세계 경상수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소수 대기업에 의존한 경제 구조가 아니라 수많은 ‘미텔슈탄트(Mittlestand)’, 즉 중소기업이 수출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경제 강국이 된 비결 중 하나는 민생 우선의 정치 구현이다. 독일은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저물가, 저인플레이션, 고임금의 선순환 구조가 됐다. 배추 소고기 등 독일 생필품 가격은 한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유통 구조가 5단계인 한국에 비해 독일은 2단계 경제 구조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득을 본다. 또한 독일의 사회안전망은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약 27%가 사회 보장제도 및 공공복지에 지출된다.

독일의 대기업은 국가에 특혜를 요구하지도 않을 뿐더러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세금을 더 많이 내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다수의 중소기업,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정부, 특권을 요구하지 않는 대기업. 이것이 독일경제의 강한 국제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강경태 < 한국CEO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