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공간의 힘은 노벨상 수상자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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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보이는 병실의 환자가 다른 환자보다 치유 빨라
공간과 심신건강 관계 분석…'신경건축학'의 세계 소개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ㅣ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ㅣ 더퀘스트 ㅣ 424쪽 │ 1만7000원
공간과 심신건강 관계 분석…'신경건축학'의 세계 소개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ㅣ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ㅣ 더퀘스트 ㅣ 424쪽 │ 1만7000원
1950년대 미국 피츠버그의 지하 연구실에서 소아마비 백신을 연구하던 면역학자이자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솔크(1914~1995)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좌절한 솔크는 안식년을 갖기로 하고 한동안 이탈리아 중부의 아시시에서 지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의 햇빛과 아름다운 풍광, 독특한 정신적 기운에 영감을 받은 솔크는 문제의 해결책을 떠올렸고,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솔크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제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의 라호야에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탁 트인 전망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구공간, 산책로와 수로의 배치가 어우러진 솔크연구소는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했고, 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의 메카가 됐다. 공간과 건축이 정신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신경건축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신경건축학의 역사는 짧다. 200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즈홀에서 열린 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의 합동 워크숍이 발전해 학회가 탄생했으니 10년 남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머무는 공간 및 건축과 심신의 건강의 관계에 대한 관심의 역사는 그보다 길다. 1984년 물리적 공간이 치유에 도움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를 밝힌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지에 발표됐다. 신경과학자 로저 울리히가 펜실베이니아주 교회의 한 병원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46명 중 23명의 침대는 숲이 보이는 창가에, 나머지 23명은 벽돌담이 보이는 창가에 두고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 투약량, 진통제의 종류 등 여러 지표를 기록했다. 그 결과 숲이 보이는 창가의 환자들이 나머지 환자들보다 24시간 먼저 퇴원했다. 진통제 사용량도 적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정신보건원에서 연구하면서 애리조나주립대 통합의학센터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신경건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태동시킨 인물. 그는 이 책에서 치유 기능을 발휘하는 다양한 공간의 사례와 함께 사람이 주변 환경에서 느끼는 감각과 치유능력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신경과학 연구의 연대기를 풀어놓는다.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연구센터에서는 사람들이 바닥에 펼쳐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는다. 나아갈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지점이 많고 길이 여러 갈래인 미로와 달리, 길이 하나뿐인 미궁이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면서 눈앞의 길에 집중하다 보면 뇌가 불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완화해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이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은 종교적 이유만은 아니다. 디즈니랜드의 테마파크나 프랭크 게리가 지은 콘서트홀, 고대의 암벽화에 나타나는 미궁이나 고층빌딩 사이의 작은 정원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평온함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프랑스 루르드의 샘물이 치유의 기적을 낳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감각, 정서, 면역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를 밝혀낸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의 성과들을 토대로 치유와 공간이 뇌와 마음에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경치나 노을, 숲 같은 풍경을 보면 엔도르핀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이 그런 사례다. 뇌는 질병과 싸우는 면역세포의 능력을 조정하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보내는데, 우리가 주변을 인식하는 방식, 빛과 어두움의 정도, 소리와 냄새, 온도와 접촉 등이 감각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경건축학의 연구 성과들은 병원이나 테마파크, 쇼핑몰의 설계와 디스플레이부터 도시공간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자연친화적 병원 설계, 차분한 색과 편안한 인테리어로 바꾼 병실, 최적의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애틀랜타의 새로운 도시공간 애틀랜틱 스테이션 등 구체적인 사례도 풍부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솔크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제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의 라호야에 솔크연구소를 세웠다. 탁 트인 전망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구공간, 산책로와 수로의 배치가 어우러진 솔크연구소는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배출했고, 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의 메카가 됐다. 공간과 건축이 정신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신경건축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신경건축학의 역사는 짧다. 200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즈홀에서 열린 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의 합동 워크숍이 발전해 학회가 탄생했으니 10년 남짓이다.
하지만 사람이 머무는 공간 및 건축과 심신의 건강의 관계에 대한 관심의 역사는 그보다 길다. 1984년 물리적 공간이 치유에 도움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를 밝힌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지에 발표됐다. 신경과학자 로저 울리히가 펜실베이니아주 교회의 한 병원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46명 중 23명의 침대는 숲이 보이는 창가에, 나머지 23명은 벽돌담이 보이는 창가에 두고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 투약량, 진통제의 종류 등 여러 지표를 기록했다. 그 결과 숲이 보이는 창가의 환자들이 나머지 환자들보다 24시간 먼저 퇴원했다. 진통제 사용량도 적었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정신보건원에서 연구하면서 애리조나주립대 통합의학센터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신경건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태동시킨 인물. 그는 이 책에서 치유 기능을 발휘하는 다양한 공간의 사례와 함께 사람이 주변 환경에서 느끼는 감각과 치유능력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신경과학 연구의 연대기를 풀어놓는다.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연구센터에서는 사람들이 바닥에 펼쳐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는다. 나아갈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지점이 많고 길이 여러 갈래인 미로와 달리, 길이 하나뿐인 미궁이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면서 눈앞의 길에 집중하다 보면 뇌가 불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완화해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이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은 종교적 이유만은 아니다. 디즈니랜드의 테마파크나 프랭크 게리가 지은 콘서트홀, 고대의 암벽화에 나타나는 미궁이나 고층빌딩 사이의 작은 정원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평온함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프랑스 루르드의 샘물이 치유의 기적을 낳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감각, 정서, 면역체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를 밝혀낸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의 성과들을 토대로 치유와 공간이 뇌와 마음에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경치나 노을, 숲 같은 풍경을 보면 엔도르핀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이 그런 사례다. 뇌는 질병과 싸우는 면역세포의 능력을 조정하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보내는데, 우리가 주변을 인식하는 방식, 빛과 어두움의 정도, 소리와 냄새, 온도와 접촉 등이 감각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경건축학의 연구 성과들은 병원이나 테마파크, 쇼핑몰의 설계와 디스플레이부터 도시공간 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자연친화적 병원 설계, 차분한 색과 편안한 인테리어로 바꾼 병실, 최적의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애틀랜타의 새로운 도시공간 애틀랜틱 스테이션 등 구체적인 사례도 풍부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