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만19세 성년, 책임과 의무를 아는 성인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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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민법상 성년이 만 20세에서 19세로 낮춰졌다. 이에 따라 1994년 7월1일 이전 출생자는 곧바로 성년의 지위를 누리게 됐다. 민법상 성년이란 부모나 후견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부모 동의 없이 결혼·약혼, 부동산 매매, 전세계약을 하거나 사업자 등록, 신용카드 발급, 휴대전화 가입, 타국 국적 취득도 가능해진다. 청소년의 조숙화와 국내외 입법 추세에 비춰볼 때 만 19세 성년은 빠르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공직선거법,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만 19세를 성년으로 인정했던 것과의 괴리와 혼선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마땅히 축하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부모 슬하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 비로소 독립된 개인으로서 법적으로 공인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년으로서 누리는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에게 마냥 축하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예컨대 무분별한 카드 과소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섣부른 결혼으로 인한 굴절된 삶을 살게 되더라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다. 스스로 감수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년의 기준이 19세냐, 20세냐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못한 이들이 너무 많고, 그 이면에는 다 큰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과보호가 있다는 점이다. 소위 헬리콥터족 부모들은 자녀를 캥거루족으로 만들고, 학교에서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는 데 소홀하다. 그래서 그 자녀들 중에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본인과 가정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불행이자 손실이다.
성년의 삶은 막중한 책임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이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싸구려 멘토링이나 힐링으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겪게 될 고단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성년은 스스로 부딪치고 이겨내는 자조(自助)의 삶이어야 축복이 될 수 있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마땅히 축하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부모 슬하에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 비로소 독립된 개인으로서 법적으로 공인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년으로서 누리는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에게 마냥 축하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예컨대 무분별한 카드 과소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섣부른 결혼으로 인한 굴절된 삶을 살게 되더라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다. 스스로 감수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년의 기준이 19세냐, 20세냐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못한 이들이 너무 많고, 그 이면에는 다 큰 자녀를 성인으로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과보호가 있다는 점이다. 소위 헬리콥터족 부모들은 자녀를 캥거루족으로 만들고, 학교에서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는 데 소홀하다. 그래서 그 자녀들 중에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본인과 가정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불행이자 손실이다.
성년의 삶은 막중한 책임의 무게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이들을 감상에 젖게 하는 싸구려 멘토링이나 힐링으로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겪게 될 고단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성년은 스스로 부딪치고 이겨내는 자조(自助)의 삶이어야 축복이 될 수 있다. 성년이 된 젊은이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