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이른바 사업 조정제도가 남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형마트에 할인 행사와 저녁시간 영업 금지를 요구하는 것은 약과다. 신규 출점이나 영업 확장 시 보상금까지 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이다. 모 유통업체가 연매출 40억원가량의 점포를 세우는 데 지역 중소상인들이 보상금을 10억원이나 요구하면서 사업조정을 신청하는 바람에 출점을 아예 포기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골목 상인들끼리 이해득실차로 싸우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올 들어 대형마트 관련 9건, SSM 관련 36건의 사업조정 신청이 중소기업청에 제기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 27일 국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촉진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까지 통과된 마당이다. 대형마트와 중소 상인들이 사업 조정에 실패할 경우 중소기업청이 강제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영업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법안이다.

대형마트의 휴일 휴무를 명령한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두 달밖에 안됐다. 이 법안마저 시행되면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중소상인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 같다.

가뜩이나 유통업체들의 5월 매출이 전월 대비 5%가량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휴일 휴무제가 시행되는 9월부터는 매출이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직원들의 일자리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고 납품업체들의 고통도 가중될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들이 최근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일요일 휴무 폐기를 촉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정부와 정치권이 유통 산업의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형 유통업체와 골목상권의 이분법적 구도로만 바라본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다. 골목 상권이 사업조정제도를 남용하는 것도 이런 시장 왜곡에서 나온 필연적인 현상이다. 한국 유통시장이 최초에서 최종 단계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사태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