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음악강국
우리나라에서 ‘국내 음악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음악인들이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정 지위를 유지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국내 음악인들은 외국인 연주자나 단체의 비교 대상이 돼 기량이 떨어지는 음악가들로 평가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학교수는 학생에 대해 고민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하기보다는 밀려드는 비생산적인 문서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졸업 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라니 왜 대학교수가 취업알선소 역할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다른 분야가 아닌 예술 분야에서 말이다.

1994년 귀국해서 근 20년 동안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스포츠 관중은 국내 프로농구를 관람하면서 미국 NBA와 비교하지 않고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반면, 왜 국내 클래식 관중은 국내 음악인들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항상 외국 연주자들과 비교하는지.

그러나 나는 학생들을 통해 희망을 봤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국제콩쿠르 석권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어린 영재들의 노력과 지도자들 덕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음악 선진국’이 된 것이다. 우리만 모르고 있을 뿐 세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를 다녀왔다. 옛날 같으면 ‘한국인 최초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 등의 기사가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겠지만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음악인이 심사위원에 위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뭐 그렇게 큰일을 만드나”라는 생각에서였다.

심사를 하면서 큰 교훈도 얻었다. 다른 나라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음악을 잘하는 영재가 많은 나라 정도다.” “일본과 중국은 자주 가봤는데 한국은 한 번도 못 가봤다. 한국에도 산이 있니?” 정말 몰라서 물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이때까지 세계 클래식 음악계와 소통을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는데도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상만 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나라 영재들의 우수성을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하고 협력을 통해 그들을 품고 클래식 세계를 선도해나가는 ‘음악 선진국’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라나는 영재들이 세계 음악시장에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일생을 바쳐 꿈꿔온 ‘음악강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오늘 밤은 힘이 솟구친다.

김대진 <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fadela04@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