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더 큰 글로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어느 마을에 영화촬영을 위해 세트장이 세워지고, 촬영 기간에 영화배우 스태프 구경꾼들이 인근 식당을 자주 찾게 됐다. 손님이 늘고 장사가 잘되자 식당 주인은 식당 규모를 늘렸다. 그러나 영화촬영이 다 끝나고 모두가 떠난 뒤 식당 주인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은 임시 영화촬영 세트장과 닮았다.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은 단기적으로 호황을 낳는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정상적인 경우에 수익성이 없을 것으로 결론날 투자 결정이 갑자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가 늘고 주가가 오르며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다. 여기저기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기업은 규모를 확장한다.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즐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거품이 걷히며 현실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낮은 금리, 혹은 거의 공짜로 돈을 대준다면 식당 주인의 문제가 해결될까. 다시 말해 잘못된 투자와 거품의 문제가 저금리와 양적완화와 같은 통화팽창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물론 식당 주인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적으로 그렇게 창출된 통화는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하지 못한다. 식당 주인과 같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사회의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허용할 뿐이다. 그것은 가치를 창출하는 다른 사업들을 희생시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인위적인 호황으로 생긴 거품은 꺼져야 하고 그래야만 자원이 가치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생산라인으로 재배치돼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거품 붕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잘못된 투자가 조정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한 공격적인 통화팽창 정책을 썼다. 이것은 진통제로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불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황을 더 깊고 길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더 큰 위기를 부른다.

금융위기 역사를 되돌아보면 잘못된 통화정책에 따른 거품과 붕괴가 발생했고, 반복된 통화팽창 정책으로 더 큰 거품과 붕괴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1987년 주식시장이 붕괴하자 대규모 확대 통화정책이 취해졌다. 그 확대통화정책으로 일시적 호황이 왔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지자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1991년에 다시 불황이 왔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다시 공격적으로 통화량을 늘렸다. 그러자 또 호황→인플레이션→통화긴축으로 1998년에 불황이 또 찾아 왔다. 다시 확대 통화정책, 긴축 통화정책의 반복이 일어났다. 그것이 1990년대 말의 닷컴버블과 붕괴로 인한 2001년 불황이다. 이 불황을 치유하기 위한 극단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더 큰 버블이 발생하고 붕괴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이 풀렸다. 이런 역사에 비춰 봤을 때 앞으로 더 큰 위기가 예상된다.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Fed가 그동안 풀었던 통화를 거둬들이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시사하자 글로벌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증시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하며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갑작스런 외국자본의 유출에 대비해 충분한 외환을 보유하고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 충격에도 견뎌낼 만큼 튼튼한 경제 체질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다가올 경제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편으로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경제를 위한 제도적 환경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옥죄고, 정부의 경제 개입이 점점 심해지면서 우리 경제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참으로 걱정이다.

안재욱 < 경희대 서울부총장 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