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AK플라자 마케팅전략팀 주임이 인턴 시절에 출퇴근하면서 쓰고 다녔던 QR코드를 부착한 박스맨 가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서성록 AK플라자 마케팅전략팀 주임이 인턴 시절에 출퇴근하면서 쓰고 다녔던 QR코드를 부착한 박스맨 가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박스맨은 인턴십을 하는 동안 만들어낸 캐릭터예요. 인턴으로 입사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 업무를 했는데, 어떻게 하면 페이스북을 홍보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애경그룹 백화점 부문인 AK플라자 분당점의 마케팅전략팀에서 근무하는 서성록 주임(31)은 “집이 서울 신촌이어서 분당 회사까지 출퇴근 시간이 하루 3시간씩 되는데 그 시간에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에게 홍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스에 QR코드를 붙이고 가면으로 만들어 직접 쓰고 출퇴근했습니다. 인턴십 3개월 동안 했더니 이전보다 회사 페이스북의 ‘좋아요’ 숫자가 6배 늘었어요. 정규직 전환을 위한 면접 때도 ‘박스맨’ 이야기가 좋은 점수를 받았죠. 이 박스가 저의 정규직 채용을 도운 일등 공신이랍니다.”

◆애경 ‘열정 캐스팅’ 합격한 박스맨


AK플라자는 지난해 11월 공채 29기 인턴사원을 뽑으면서 일반전형과 함께 ‘열정캐스팅’이란 특별전형을 첫 도입했다. 열정캐스팅은 서류 전형부터 최종 면접까지 학력, 나이, 어학 점수, 자격증 등을 일절 보지 않는 파격 전형. 서류 합격자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면접과 실무진 면접, 임원 면접을 거쳐 뽑는다.

열정캐스팅 합격자들은 3개월간의 인턴십을 거친 뒤 최종 면접을 통해 일반전형 사원들과 함께 정규직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이번에 열정캐스팅으로 뽑힌 7명의 인턴사원 중 6명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서 주임도 그중 한 명으로, 지금은 마케팅전략팀에서 SNS 업무를 맡고 있다.

“입사 전 3년간 광고프로덕션을 운영하며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어요. 사업을 하면서 ‘서른 살 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고 생각했죠. 서른이 넘으면서 ‘이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자’고 다짐했어요.”

서 주임은 사업과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이 SNS 분야의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분야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AK플라자 입사를 결심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채용 과정 덕분에 입사의 꿈을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블로그나 SNS를 지켜보면서 AK플라자가 SNS 분야에 굉장히 적극적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않고 실현시켜주는 회사의 정책도 좋았죠. 일반 공채를 준비했다면 합격이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저는 한 번도 입사 준비를 해본 적이 없고 나이도 많으니까요.”

◆“스스로 최고의 콘텐츠 돼야”

열정캐스팅은 열린 채용답게 서류 전형부터 파격적이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을 100자 이내로 쓰는 것이 서류 전형의 전부였다. 그는 일단 시선을 끌기 위해 MC몽, 버스커버스커, 걸스데이 등 자신이 제작한 뮤직비디오 가수들과의 스토리를 쓰고 3년간 바이럴 마케팅(네티즌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알리는 기법) 영상과 SNS 관련 경험이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1차 서류 합격을 한 뒤에는 포트폴리오 면접이 진행됩니다. 자유 형식으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8분간 발표를 하죠. 저는 늘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최고의 콘텐츠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늘 스스로 최고의 콘텐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을 파워포인트에 담아 보여드렸습니다.”

서 주임은 광복절을 맞아 세계 10여개국을 돌며 홀로 진행한 만세 릴레이, 주변 물건들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은 뒤 모아 태극기를 만들었던 경험, 시내버스를 타고 전국일주를 했던 영상 등 열정적으로 살았던 결과물도 정리해 발표했다.

열정캐스팅의 마지막 관문인 임원 면접은 가장 어려운 벽이었다. 서 주임은 근엄한 임원진에 “자기소개가 길다”며 시작부터 핀잔을 들었다. ‘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그가 임원 한 명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됐다. “사실 일부러 외우고 싶어서 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심이 있어 회사 홈페이지도 자주 찾아보고 뉴스도 검색하다보니 저절로 외우게 된 거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제가 지원하는 분야의 상무님 성함을 말했더니 다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때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아요.”

◆“인턴사원은 패기가 중요”

그는 SNS 분야에서 일을 배우면서 스스로 박스맨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퍼포먼스인 ‘할렘셰이크’가 국내에 알려지기 전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을 보고 ‘유통이 트렌드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할렘셰이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AK플라자의 할렘셰이크 영상은 오후 8시 방송 뉴스에 노출되는 등 화제를 만들어냈다.

그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업무 태도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이가 많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채용까지 이어지는 행운을 얻어냈다.

“인턴사원, 신입사원은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생각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신입다운 패기와 열정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거죠.”

박해나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phn0905@kbizweek.com

서성록 1983년생,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런던 필름 스쿨 인턴십 1년, 광고프로덕션 운영 마케팅전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