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벽면에 '미술옷' 입혔더니 생기 돌아요"
“거실이나 사무실 벽에 걸린 액자 그림이 기약없이 불쑥 찾아온 손님 같은 느낌이라면, 벽화는 오래된 친구처럼 공간에 평안함을 선물합니다. 벽화와 같은 벽면 장식기법이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이지요.”

29일부터 내달 1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룩스에서 벽화기법의 ‘크로키’전을 여는 이강일 세한대 교수(56·사진). 그는 “벽화에는 행복을 뿜어내는 마력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절감해 쇠락해가는 도시에 ‘미술의 옷’을 입히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18년째 남도의 황토와 어우러진 해송을 그려온 ‘소나무 작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둔황벽화를 보고 벽면 장식에 심취해 벽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30년대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벽화운동을 상기하며 지난해 전남 영암 세한대에 국내 최초의 환경인테리어 벽화학과를 신설했다.

그간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벽화도 부지기수다. 1.5㎞의 영산강 하구둑 벽화를 비롯해 1㎞의 흑산도 일주도로 벽화, 함평 11개 초등학교 외벽 벽화, 전남도청 로비 8m 대형벽화, 대불대 체육관 18m 벽화, 경주교육문화회관 로비 4m 벽화, 목포 법원 로비 11m 벽화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표현주의 기법의 소나무 작가로 알려진 그가 벽화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저는 남도 지역의 해송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이라는 관계성을 추구합니다. 벽화 사업도 제 화풍과 맞아떨어지죠. 벽화는 시설 개선이나 리모델링이 아니라 공공 예술이라는 점에서 미술의 새로운 한 장르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미감을 불어넣는 벽화야말로 후미지고 삭막한 공간을 살리는 공기 같은 것이죠.”

“도시 전체를 하나의 ‘꿈을 꾸는 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그는 기존 프레스코 기법에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프레스코 습성기법을 개발해 건물 외벽에 적용하고 있다. 회반죽을 벽면에 바르고 완성될 때까지 습도를 유지하면서 건조하는 기법으로, 시멘트 벽에 칠한 페인트가 퇴색하고 벗겨져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했다고 한다.

그의 해송 그림 역시 습식 벽화기법으로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소나무와 현대인의 감성을 테마로 아우른 크로키 근작 20여점을 건다. (02)720-848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