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반 일본에서 박카스 제조 기술을 들여온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작명을 놓고 한참 고민했다. 그때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 입구에서 봤던 술과 추수의 신상 박카스가 떠올랐다. ‘애주가들의 건강을 지켜주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강 회장은 무릎을 쳤다. 그렇게 탄생한 ‘박카스’가 50년째 장수 브랜드로 인기를 누릴 줄은 강 회장도 미처 예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근의 시장 환경에서 브랜드 하나가 5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박카스는 생명력뿐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습을 통해 매출과 시장 점유율까지 늘려 국내 제약업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로 자리잡았다.
(좌)1960년 박카스 광고 샐러리맨 시리즈. /(중)1999년 젊음,지킬 것은 지킨다. /(우)2012년 풀려라 4800만! 풀려라 피로!
(좌)1960년 박카스 광고 샐러리맨 시리즈. /(중)1999년 젊음,지킬 것은 지킨다. /(우)2012년 풀려라 4800만! 풀려라 피로!
○박카스의 시행착오와 성공 스토리

당초 박카스가 1961년 처음 선보일 당시에는 알약 형태의 ‘정제’였다. 그런데 기술적 문제로 알약을 감싸는 당의가 녹아내리는 문제가 빈발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고민 끝에 1962년 앰플제로 바꿨다.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앰플을 다루는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운반 과정에서 파손되는 사고가 잦았다. 이 같은 시행착오 끝에 1963년에야 지금과 같은 드링크 타입의 ‘박카스D’(Drink)가 완성됐다.

타 업체를 선도하는 마케팅 전략도 한몫 했다. 초반 타깃 포인트는 ‘간 보호’에 맞췄다. 1960~1970년대 음주문화를 감안한 것이다. 최호진 동아제약 홍보이사는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한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던 시절이라 초반에는 간장 보호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루트카’를 앞세운 독특한 유통 전략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의약품은 도매상을 거쳐 소매약국에 출하하는 경로를 거쳤으나 동아제약은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를 도입해 소매약국을 직접 파고들었다. 그 선봉에는 일정 지역의 약국을 영업맨들이 박카스를 실은 트럭을 몰고 직접 공략하는 ‘루트카’가 있었다. 지금도 전국 2만여개 약국을 ‘루트카’가 직접 공급하고 있다.

○관행 깬 광고·마케팅으로 부동의 1위

대량 생산(Mass Production) 대량 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 판매(Mass Sale) 등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3M’ 전략을 내세운 공격적 마케팅도 맞아떨어졌다. 특히 박카스 광고는 매번 업계의 이슈가 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의약전문지를 통한 의사, 약사 대상의 광고 방식에서 탈피해 TV 라디오 신문 옥외광고 등 매스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1960~1970년대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의 증언식 광고,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유명 여배우 남미리를 등장시킨 시리즈 광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출시 첫해 35만병이 팔려 나갔다. 박카스D 출시 1년 만인 1964년 드링크제 1위에 오른 뒤 50여년 동안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13년 현재까지 팔려 나간 박카스는 177억병에 달한다.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를 52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매출 1700억원대를 기록, 동아제약을 포함한 동아쏘시오홀딩스그룹의 단일 판매 품목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다.

50여년 동안 큰 시련도 적지 않았다. 특히 1976년 오남용을 우려해 정부가 자양강장 드링크 제품의 일반 대중광고를 금지한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홍보 부족, 맛 변화에 대한 소비자 불만 등이 쌓이면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양약품의 ‘원비디’ 등 경쟁 드링크제가 나와 1위 자리를 위협했다.

광고 해금 이후 기존 제품과 차별화한 ‘휴머니티’ 콘셉트 광고로 대대적 반격에 나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냈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등의 명카피들이 쏟아졌다.
강득희(왼쪽), 이용기 차장이 30년을 함께해온 박카스 루트카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득희(왼쪽), 이용기 차장이 30년을 함께해온 박카스 루트카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58년 개띠 동갑내기 영업맨 강득희·이용기 차장
"애들 공부시키고 노후준비도 하고... 박카스 덕에 지난 30년 행복했죠"

‘58년 개띠’ 동갑내기 신입사원 두 사람이 1984년, 4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동아제약 박카스사업부에 입사했다. 스물여섯 새내기 동기는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7시 정각에 박카스를 가득 실은 ‘루트카’을 몰고 동아제약 본사를 나섰다. 그렇게 수도권 약국을 누빈 지 30년. 그동안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다시 성인이 됐다.

동아제약 박카스사업부 강득희·이용기 차장(55)은 30년 동안 매일 약국에 박카스를 배달해온 박카스 영업의 산증인들이다. 강 차장은 “힘들 땐 박카스를 하루에 5~6병씩 마시면서 기운을 차리고 박카스 판매 덕분에 애들 교육시키고 재테크하고, 한마디로 박카스 힘으로 30년을 버텨왔다”고 말했다.

1.5 트럭에 박카스를 가득 실어 거래처에 납품한 뒤에는 새로 생기는 약국 등을 찾아 다니며 거래처를 뚫는 게 주업무였다. 강 차장은 “박카스와 비슷한 상품을 들여 놓은 약국들을 뚫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까지 동원해 손님인 것처럼 가장해 ‘박카스 없어요?’라고 계속 성가시게 해서 거래처를 확보한 적도 있다”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올 연말 정년퇴직을 앞둔 강 차장은 “박카스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제게는 희망,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임금이 깎인 적도 없고 자녀 두 명까지 대학 학자금을 지원해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살림살이를 꾸려올 수 있었다. 그는 “해외여행이 어렵던 1993년 영업실적 포상으로 처음 부부 동반으로 홍콩, 마카오 여행을 갔을 때 가장으로서 가장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직접 몸으로 배달하는 박카스 영업은 여간 고되지 않았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일을 거드는 아르바이트를 1주일 한 뒤 저녁 밥상 앞에서 “아빠,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는 코끝이 찡해졌다고 한다.

이 차장은 30년 동안 강 차장과 한솥밥을 먹은 입사 동기다. 그는 “26살에 첫 직장으로 시작한 박카스 영업은 인생 그 자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30년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종로 담당이었는데 시장통에서 배달간 사이 박카스가 한 박스(100개들이)씩 없어져서 하루는 숨어서 지켜보니까 당시 지게꾼들이 들고 가더라. 어려운 사람들인 데다 괜히 불화를 일으키기 싫어 개인돈으로 메워 넣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중간중간 신흥 드링크제의 도전도 없지 않았다. 영업맨들 사이에선 ‘10년 주기설’로 통한다. 이 차장은 “1990년대에는 ‘원비디’ ‘영비천’의 도전을 받았고 2000년대에는 비타500이 시장을 파고드는 등 10년 주기로 도전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격적인 영업과 방송광고 등을 통해 소비층을 중장년에서 청년층으로 넓히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영업 전략으로 모두 물리쳤다”며 뿌듯해 했다.

이 차장은 오는 6월 말 정년 퇴직할 예정이다. 강 차장보다 입사는 4개월 늦었지만 생년월일이 빨라서다. 그는 “워낙 좋은 회사니까 집안에서는 다소 섭섭해 하면서도 고생했다고 하더라. 박카스 덕분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월급이 오르고 실적에 따른 보너스까지 받아 노후 준비도 그런대로 잘해놨다”며 감사를 표했다.

◆동남아에 '박카스 한류'…캄보디아서 레드불 제치고 1위
작년 6000만캔 수출미얀마 등 적극 공략

‘동남아에서 또 하나의 한류 열풍 주역 박카스.’

박카스가 동남아에서 새로운 ‘한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남아 가운데 특히 캄보디아가 박카스 열풍의 진원지로 꼽힌다. 지난해 6월 박카스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레드불’을 밀어내고 1위 자리에 올라 현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캄보디아로 수출한 박카스는 6000만캔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170억원 정도지만 캄보디아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5분의 1인 점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규모다.

동아제약의 박카스가 캄보디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현지 파트너사와의 협업 덕분이다. 현지 유통사는 캄보디아에서 이름도 생소한 박카스를 알리기 위해 자비를 들여 캄보디아 최초로 음료수 옥외광고를 시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에 동아제약은 캄보디아가 196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샐러리맨의 피로 해소를 콘셉트로 잡았다. 캄보디아의 깜짝 실적은 강신호 회장도 놀랄 정도였다. 강 회장은 현지 유통사 사장에게 공로상을 전달하며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이렇게 팔 수가 없다. 그 열정에 감복했다”고 격려했다.

박카스는 캄보디아에서의 성공신화를 발판 삼아 미얀마 필리핀 등 동남아 시장으로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진출 초기 단계인 미얀마에서는 현지 업체와 비즈니스 협의를 진행 중이고 필리핀에서는 현지 웹사이트를 이용한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카스의 도전은 북미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시안계와 히스패닉 고객을 겨냥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탄산을 함유한 박카스캔을 앞세워 동부 및 LA지역 등 한인마켓을 공략하고 있다.

‘바오지아스’라는 브랜드로 팔리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전까지는 판매처가 한인 및 동포시장 위주였으나, 현재 중국 마트 입점 등을 통해 중국 한족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캔은 젊은층을 겨냥해 동아제약의 오랜 자양강장제 노하우를 살려 만든 글로벌 제품”이라며 “에너지 드링크 강자인 레드불 제품에 비해 깔끔한 맛과 가격 경쟁력이 있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