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오늘 위한 답, 전통사회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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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 완결편
파푸아뉴기니 사회 통해 문명공동체 낯설게 바라보기
전통시대 전쟁 여자·돼지 때문…분쟁·육아방식 등 다방면 분석
어제까지의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ㅣ 강주헌 옮김 ㅣ 김영사 ㅣ 744쪽 │ 2만9000원
파푸아뉴기니 사회 통해 문명공동체 낯설게 바라보기
전통시대 전쟁 여자·돼지 때문…분쟁·육아방식 등 다방면 분석
어제까지의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ㅣ 강주헌 옮김 ㅣ 김영사 ㅣ 744쪽 │ 2만9000원
여행 가방을 든 승객, 유니폼을 입은 항공사 직원, 제복을 입은 조종사와 스튜어디스, X-선 수하물 검사. 2006년 4월30일 파푸아뉴기니의 포트모르즈비 공항은 여느 서구 사회의 공항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1931년 호주인들이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이 지역에는 100만명가량의 주민이 풀로 만든 스커트로 하체만 가린 채 석기를 사용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스쳐 지나가지만 당시엔 낯선 사람과 맞닥뜨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고 폭력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당연히 경찰이나 정부도 없었다.
이 두 사회의 차이는 뭘까. 우리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세계적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지리학과 교수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에 이어 문명 연구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사회와 비국가 전통사회의 차이를 심도있게 들여다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낯설게 만든다. 분쟁의 해결 방식, 전쟁의 원인과 형태, 아이를 기르고 노인을 대우하는 방법, 종교와 언어의 모습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하며 문명과 전통사회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은 두 사회의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파푸아뉴기니의 한 도로에서 말로라는 남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다 빌리라는 어린 학생을 죽였다. 고의성이 전혀 없는 사고였지만 말로는 바로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말로는 빌리와 다른 종족이었기 때문에 차에서 내렸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 기드온은 빌리의 친척들이 회사의 직원들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근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보상을 협의하기 위해 빌리의 아버지에게 ‘특사’를 보냈다. 회사는 빌리 가족에게 1000키나(약 30만원)의 돈과 약간의 음식을 보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사건 당사자들은 모두 감정적으로까지 화해했다.
서구화된 사회였다면 피해자의 가족은 민사소송을 계획했을 것이고 가해자의 가족은 변호사, 보험회사 직원과 함께 소송에 대비했을 것이다. 사법체제라는 국가 시스템이 개입하고 사적 복수는 일어나기 힘들다. 뉴기니 전통사회에서는 복수든 보상이든 당사자가 직접 나선다. 진정한 보상은 관계의 회복이다. 서구사회보다 관계가 중요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한 부족사회에서는 부부싸움에 부족 구성원 모두가 개입하고 간섭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저자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중 한 쪽이 낫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상습적인 전쟁과 폭력, 유아 살해 등에서 해방된다는 걸 뜻한다. 남편을 먼저 보낸 과부를 목졸라 죽이는 관습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 배울 것도 적지 않다. 뉴기니의 전통사회에는 뇌졸중과 당뇨병, 심장마비와 같은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을 천천히 먹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주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칼로리의 90%는 고구마에서 얻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스트레스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인간 사회의 전쟁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 유전자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돼 있다는 주장을 그는 반박한다. 전쟁을 전혀 하지 않는 전통적 사회도 적지 않다. 치열한 자원 경쟁과 힘의 불균형이 전쟁을 부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뉴기니 전통사회에서는 여자와 돼지, 복수가 전쟁의 원인이다.
1964년부터 50년간 뉴기니 섬을 방문하며 연구해온 다이아몬드 교수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인식케 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게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보다는 오히려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내 연구의 해답이 전통사회에 있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압도적인 저자의 지식에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이 두 사회의 차이는 뭘까. 우리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세계적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지리학과 교수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에 이어 문명 연구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사회와 비국가 전통사회의 차이를 심도있게 들여다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낯설게 만든다. 분쟁의 해결 방식, 전쟁의 원인과 형태, 아이를 기르고 노인을 대우하는 방법, 종교와 언어의 모습 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하며 문명과 전통사회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은 두 사회의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파푸아뉴기니의 한 도로에서 말로라는 남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다 빌리라는 어린 학생을 죽였다. 고의성이 전혀 없는 사고였지만 말로는 바로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말로는 빌리와 다른 종족이었기 때문에 차에서 내렸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 기드온은 빌리의 친척들이 회사의 직원들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근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보상을 협의하기 위해 빌리의 아버지에게 ‘특사’를 보냈다. 회사는 빌리 가족에게 1000키나(약 30만원)의 돈과 약간의 음식을 보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사건 당사자들은 모두 감정적으로까지 화해했다.
서구화된 사회였다면 피해자의 가족은 민사소송을 계획했을 것이고 가해자의 가족은 변호사, 보험회사 직원과 함께 소송에 대비했을 것이다. 사법체제라는 국가 시스템이 개입하고 사적 복수는 일어나기 힘들다. 뉴기니 전통사회에서는 복수든 보상이든 당사자가 직접 나선다. 진정한 보상은 관계의 회복이다. 서구사회보다 관계가 중요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한 부족사회에서는 부부싸움에 부족 구성원 모두가 개입하고 간섭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저자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중 한 쪽이 낫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상습적인 전쟁과 폭력, 유아 살해 등에서 해방된다는 걸 뜻한다. 남편을 먼저 보낸 과부를 목졸라 죽이는 관습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 배울 것도 적지 않다. 뉴기니의 전통사회에는 뇌졸중과 당뇨병, 심장마비와 같은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을 천천히 먹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주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칼로리의 90%는 고구마에서 얻는다.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스트레스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인간 사회의 전쟁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 유전자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돼 있다는 주장을 그는 반박한다. 전쟁을 전혀 하지 않는 전통적 사회도 적지 않다. 치열한 자원 경쟁과 힘의 불균형이 전쟁을 부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뉴기니 전통사회에서는 여자와 돼지, 복수가 전쟁의 원인이다.
1964년부터 50년간 뉴기니 섬을 방문하며 연구해온 다이아몬드 교수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인식케 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게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보다는 오히려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내 연구의 해답이 전통사회에 있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의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압도적인 저자의 지식에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