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암을 찾은 김희옥 총장(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현응스님. / 동국대 제공
영일암을 찾은 김희옥 총장(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현응스님. / 동국대 제공
부산의 작은 암자에서 수행 중인 한 스님이 인재 양성을 위해 써 달라며 동국대에 6억 원을 쾌척해 화제가 됐다.

5일 동국대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시 기장군 소재 영일암 주지 현응스님(75). 영일암은 특정 종단이나 법인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사찰이다. 개인사찰 주지로 절 살림을 아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기부한 것이다.

현응스님은 기부하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가 학교 계좌로 송금했다. 약정서를 쓰고 대학을 찾아 기부하는 일반적 관례를 깼다. 김희옥 동국대 총장이 감사 인사차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이마저 마다했다.

스님의 '급한 기부'는 지난달 말 정상영 KCC 회장이 모교인 동국대에 100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결정됐다. 자신의 모교는 아니지만 정 회장의 기부 소식을 들은 현응스님 역시 곧바로 은행을 찾았다.

스님은 "수행자가 부처님의 자비 정신에 입각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다만 사람들에게 권선 메시지를 주고 행복한 사회에 힘을 보태기 위해 언론에 알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현응스님은 인근에서 '4무(無) 스님'으로 통한다. 핸드폰과 자동차, 인터넷,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스님이란 뜻이다.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살아온 지 오래다. 40대 중반 출가 당시 입은 30년 된 승복을 아직도 기워 입고 있다. 자동차 대신 마련한 오토바이도 타고 다닌 지 20년이 넘었다. 한 달 기름값은 4000원, 절 살림을 맡은 공양주 보살이 장을 볼 때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사용하는 게 전부다.

이렇게 모은 돈은 불교 발전에 아낌없이 썼다. 현응스님은 지난 2007년에도 사찰 소유의 토지보상금 3억7000만 원 전액을 기부했다. 세금 2000만 원을 제외하고 동국대 일산불교병원과 중앙승가대, 불교TV에 1억 원씩 발전기금을 기탁했으며 논산 군법당 기금으로도 5천만 원을 내놓았다.

이번에도 일체 사례를 거절한 스님은 영일암을 찾아온 김 총장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는 "개인사찰이지만 신도들의 보시로 모인 사찰 재산은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기부 소식을 접한 뒤 직접 부산의 사찰을 방문한 김 총장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스님께서 사회를 비추는 매우 뜻 깊은 연등 하나를 밝히신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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