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는 턴테이블…LP의 화려한 부활
199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록가수 닐 영은 지난해 1월 미국의 한 콘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가 집에서는 LP(long playing) 음반으로 음악을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팟’으로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한 애플의 창업자가 정작 본인은 LP를 즐겨 들었다는 것이다.

돈 많은 부호의 값비싼 취미라고 신기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잡스처럼 LP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아니다. 오히려 20~30대가 주도하는 ‘최신 트렌드’다.

○LP 판매량 5년 전보다 4.6배 증가

1948년 미국의 대형 음반사 컬럼비아레코드가 만든 지름 30㎝짜리 LP는 20세기 음반산업의 주인공이었지만 간편하고 깨끗한 음질의 CD에 밀리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음반시장 조사업체 닐슨사운드스캔에 따르면 1993년 미국 내 LP 판매량은 30만장으로 사실상 ‘괴멸’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 LP 판매량은 460만장에 이른다. 전년 대비 17.9%, 5년 전과 비교하면 4.6배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CD 판매량은 1억9300만장으로 전년도보다 13.6% 줄었다. 단순히 규모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LP가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상황이라면 CD는 하향세에 접어든 모습이다.

지난달 20일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레코드 스토어 데이’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2007년 처음 시작된 행사로 전 세계 수백여곳의 레코드 가게에서 음반 판매,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행사의 ‘백미’는 이날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음반 판매다. 3000~5000장 정도의 한정판 LP를 만들어 판다. 올해는 본 조비, 데이비드 보위, 린킨 파크 등 50여팀이 음반을 선보였다.

○20~30대가 LP 부활 주도

국내에서도 이달 25일 서울 논현동 플래툰쿤스트할레에서 제3회 ‘서울 레코드 페어’가 열린다.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본떠 만든 행사로 ‘공무도하가’(이상은), ‘드리프팅’(미선이) 등 1990년대 명반과 ‘길트 프리’(이이언), ‘1/10’(브로콜리너마저) 등 신작들을 LP로 구입할 수 있다. 행사 관계자는 “주 방문자는 20~30대로 이들이 새로운 LP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LP로 음반을 내는 한국 뮤지션들도 늘고 있다. 미국은 뮤즈, 레이디 가가 등 ‘현역’ 가수들도 LP 음반을 꾸준히 내놓았지만 한국 시장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봄여름가을겨울, 들국화, 패티김, 김광석 등의 음반이 새롭게 LP로 발매됐다. 지난달 새 음반을 발표한 ‘가왕’ 조용필도 이달 중 LP를 내놓을 계획이다. 2AM과 같은 아이돌 그룹도 대열에 합류했다. 2011년 10월 설립된 국내 유일의 LP공장 엘피팩토리의 이길용 대표는 “해외 K팝 팬들을 겨냥한 음반 제작 문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음악을 듣는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음원으로 바뀌면서 역설적으로 LP가 부활했다고 설명한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기념품’처럼 LP를 산다는 것이다. 음악은 디지털 음원으로 듣고 소장용으로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CD보다 크기가 큰 LP에 더 눈독을 들인다는 것이다.

동시에 LP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 백화점에 따르면 1~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대 정도 나가던 턴테이블이 최근 들어 20~30대까지 팔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LP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직장인 최지환 씨(34)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레코드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