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검찰 조사를 마치고 30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검찰 조사를 마치고 30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2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전격 소환했다. 특별 수사팀을 꾸린 지 열흘 만에 국정원 전 최고 책임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서 그 배경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검찰조사를 마치고 30일 자정을 넘겨 귀가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이날 오전 10시 원 전 원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앞서 원 전 원장은 대선·정치 개입 등을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공직선거법 위반)로 민주통합당과 시민단체 등에 의해 검찰에 고발돼 지난달 출국 금지됐다.

그는 지난해 대선 전후 국정원 직원들이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아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사건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을 통해 ‘종북좌파’ 세력의 사이버 선전·선동을 막고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성과를 적극 홍보하도록 주문했다는 의혹도 있다.

원 전 원장은 지난 26일께 검찰로부터 소환을 통보받고 이날 변호인 1명과 함께 출석했다. 신문을 담당한 수사관 두 명은 △댓글 작업 지시 여부 △민주당이 공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의 배경 등을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격소환 배경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한 지 오래됐고 국민적 관심도 많다 보니 빨리 소환했다”며 “검찰 판단으로는 가장 적절한 (소환) 시기로, 향후 수사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필요에 따라 원 전 원장을 두세 번 더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다만 도피 우려가 낮은 것으로 판단해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원 전 원장을 빨리 소환한 것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혐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 26일과 27일 ‘댓글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진 민모 전 심리정보국장과 이모 전 3차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지 이틀 만에 원 전 원장을 소환했다.

일반적으로 자료 분석과 참고인 조사 등을 어느 정도 마친 다음 핵심 당사자를 소환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압수수색이나 서면조사 등 사전작업도 없이 핵심 지휘라인 당사자들을 잇따라 부른 것으로 볼 때 핵심 증거 등을 이미 확보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건 공소시효가 6월19일로 다가온 것도 압박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 수사 범위가 정치권 등 더 높은 ‘윗선’의 개입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원 전 원장이 여당 등 정치권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조직적인 행동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건을 좀 더 들여다 봐야겠지만 정치권 개입 여부는 아직까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