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준 높은' 건설업 지원의 조건
“쌍용건설을 죽이면 직원들도 함께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워크아웃 중인 쌍용건설의 한 직원이 기자에게 전화로 건넨 섬뜩한 말이다. 지난 26일 ‘쌍용건설을 살리기 위해선 1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자금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본지 기사가 나온 직후였다.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이해는 갔다. 극한 표현에서 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한 절박함과 노력이 느껴졌다.

같은 날 40여개 은행들도 이른바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다. 쌍용건설을 살리려면 당초 예상의 2~3배에 달하는 9200억원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채권단 회의에서 세 시간 넘는 격론을 벌였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상당수 은행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작년부터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에 들어갔는데, 그때마다 수천억원의 대출채권 대부분이 휴지 조각이 됐다”며 “건설사 지원도 이제 한계에 달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저녁 무렵엔 STX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은행 입장에선 건설사 등 한계기업에 더 돈을 넣기엔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됐다. 무조건적인 자금 지원은 금융권의 동반 부실을 가져오고 국민의 혈세 투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지원을 마냥 외면하기도 힘든 분위기다. 건설·조선·해운업체들의 어려움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며칠 전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수준 높은 건설사 지원’을 강조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는 더 커졌다.

따지고 보면 올초 금융위원회 산하의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쌍용건설 지분을 채권단에 떠넘기고 손을 떼면서 일이 이 지경까지 왔다. 은행들만 건설사 지원에 총대를 멜 일이 아니라, 정부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건설사 구조조정에 대한 은행들의 합리적 판단을 존중해 주든지, 아니면 정부가 지원 기준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정부 차원의 대책도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수준 높은 건설사 지원’이라는 모호한 말 뒤에 숨어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로는 더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뿐이다.

장창민 금융부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