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길 성주음향 회장이 수원 영통에 있는 연구개발센터에서 자사가 생산하는 다양한 스피커 사이에서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최윤길 성주음향 회장이 수원 영통에 있는 연구개발센터에서 자사가 생산하는 다양한 스피커 사이에서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1988년 경기 구리시. 어두컴컴하고 습기가 찬 반지하 셋방 앞에 이삿짐 차가 멈춰섰다. 최윤길 씨(당시 36세)와 아내는 작은 트럭에서 짐을 날랐다. 반지하에서는 특유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퍼져나왔다. 최씨는 전세에서 사글세로 이사한 뒤 마련한 종잣돈 수백만원으로 이 동네에서 창업했다.

약 70평짜리 월세 공장을 얻어 유선전화에 들어가는 소형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지금의 성주음향(회장 최윤길·61)이다. 최 회장의 부인은 창업 이후 12년 동안 공장에 출근해 직원들을 위해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최윤길 성주음향 회장, 세계 선도 기술개발로 승부 "TV시청자 10명 중 4명 우리 스피커 소리 듣고 있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성주음향은 연매출이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포천에 본사, 수원에 연구소를 두고 중국의 톈진과 둥관, 태국 헝가리 슬로바키아 멕시코 등 6곳에 공장 및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수출지역은 동남아 중국 유럽 미국 브라질 등 거의 모든 대륙에 퍼져 있다.

국내외 종업원은 약 2000명이다. 생산은 중국 태국 등 해외 법인이 맡고 국내는 연구·개발과 마케팅을 주로 담당한다. 국내 인력 90명 중 연구·개발 인력이 60명에 이르는 것은 신제품 개발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우리는 전 세계 TV용 스피커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건 유럽이건 TV를 보는 사람 10명 중 4명은 이 회사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셈이다. 연간 수출액은 8000만달러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주고객이지만 일본의 몇몇 가전업체에도 납품한다. 어떻게 이 회사는 4반세기 만에 TV 스피커 분야의 강자가 됐을까.

첫째, 스피커산업에서 37년 동안 한우물을 파며 쌓은 노하우다. 강원 평창 출신인 최 회장은 평창종합고등학교 졸업 후 부천에 있는 스피커업체 (주)북두에 입사해 이 제품과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평생 스피커 외길을 걷고 있다.

그는 북두에서 12년간 일한 뒤 1988년 성주음향을 창업했다. 이곳에서 유선전화기와 뻐꾸기시계용 스피커를 만든 뒤 점차 생산품목을 늘려갔다. 뻐꾸기시계용 스피커는 주로 일본으로 수출했다. 초창기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것이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여러 분야로 다각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스피커 한 제품에만 매달렸다. 개발해야 할 분야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과감한 인수·합병이다. 최 회장은 앞선 기술과 시장을 빨리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 인수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5차례나 기업을 인수했다. 자동차 스피커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신광전자를 비롯해 자신이 일했던 북두의 자동차스피커사업부, 삼성전기에서 분사된 스피커업체 광원텍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시계용 스피커에서 카오디오, TV, PC 등 다양한 용도의 스피커를 만들었다.

셋째, 대기업과의 동행이다. 그는 “삼성전자에 스피커를 납품하면서 삼성에서 기술과 자금 등 다양한 도움을 받았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강자로 도약하면서 이 회사의 스피커 판매도 늘어났다. 이 회사가 중국 톈진 둥관을 비롯해 태국 헝가리 슬로바키아 멕시코 등 6곳에 공장이나 지사를 둘 수 있는 것도 삼성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 회장은 “중소기업이 전자부품이나 자동차 전장용 제품을 개발할 때는 대기업과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진출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야 해외공장설립에 따른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주음향의 매출액 가운데 TV용 스피커는 약 65%를 차지한다.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삼성 등에 공급하는 자동차용 스피커는 전체 매출의 약 15%, 나머지가 20%를 차지한다.

최 회장도 여느 중소기업인처럼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본사를 구리에서 포천으로 이전하면서 번듯한 공장을 지었지만 5년 만에 공장이 화재로 전소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2년 8월 발생한 불로 공장은 기둥 하나 남지 않고 폭삭 내려앉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는 어려움을 행운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왕 다시 짓는 거 완벽한 시설을 갖추자’고 다짐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얻은 환차익을 사내에 유보해뒀는데 이 자금으로 현대식 공장을 지어 삼성의 까다로운 공장심사에 합격했을 뿐 아니라 국제경쟁력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주음향이 생산하는 제품은 TV에 들어가는 일반 스피커를 비롯해 고음전용 스피커, 자동차용 스피커, 고음·중음·저음을 하나의 스피커에 갖춘 시스템스피커, 홈시어터 등이다. 이 회사는 수원 연구개발센터에서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최 회장이 국내 인력의 대부분을 연구·개발 인력으로 채운 것은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에 얼마나 관심을 쏟는지 보여준다. 그는 “과거의 기술만 우려먹던 시절은 끝났다”며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개발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작고 가볍고 얇은 스피커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제품이 갈수록 얇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크기만 줄이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출력이나 성능은 더욱 뛰어나야 한다. 첨단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의료기기용 스피커와 실내공연장 교회 등에서 쓰는 대형 스피커(PA: Public Address), 소리를 의자의 진동으로 느끼는 바이브레이터 등 새로운 스피커 개발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의료기기용 스피커는 체중 혈압 등 여러 가지 점검 내용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장치다. 최 회장은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회가 많다”며 “교회에서 쓰는 대형 스피커 시장에도 뛰어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환갑을 넘긴 최 회장은 올해 초 포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이 지역 업체들의 공통애로 해결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누이좋고 매부좋고"…대기업서 받은 혜택, 협력사에 베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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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길 회장의 아버지 고향은 강원 통천이다. 월남해 평창에서 터를 잡았고 이곳에서 최 회장은 태어나 고교를 졸업했다. 그러다 보니 학연·지연·혈연이 없다. 오로지 뚝심과 과감한 투자, 긍정적인 사고로 사업을 일궜다.

그의 전략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로 요약된다. 어느 일방만 이득을 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혜택을 받은 만큼 40개 협력업체에 비슷한 혜택을 준다. 최 회장은 “더불어 사는 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 부품의 품질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업원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중국 톈진 공장 근로자 중 10년 근속자에게는 1주일간 한국 여행 기회를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조만간 2억원을 출연해 국내 근로자를 위한 사원복지기금도 만들 계획이다.

최 회장은 “이를 통해 경조사비를 지원하고 장학금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시집간 여자가 의지할 수 있는 ‘넉넉한 친정집’과 같아야 한다”며 “그래야 직원들이 걱정 없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