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박근혜 에너지'는 무슨 색깔?
박근혜정부 에너지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직접 거론하고 나서면서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농축’과 ‘재처리’가 전면에 부상하며 오로지 이게 돼야만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도, 원전 수출도 절로 풀리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급기야 ‘핵주권론’ ‘핵무장론’까지 덧씌워지기 시작하면서 원전이란 에너지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당장 이 정부가 약속한 임기 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과 착공 추진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협정 개정 협상을 2년간 벌인다니 공론화조차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공론화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싹수가 노랗다.

기회주의 세력들만 득실

이러다 보니 기회주의 세력만 득실댄다. 대표적인 게 국가 연구비에 재미를 붙인 과학자들이다. 무슨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폐핵연료 재생처리)’ 연구·개발(R&D)만 되면 모든 문제가 싹 사라질 것처럼 떠든다. 심지어 파이로가 안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포화로 원전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겁주는 과학자도 있다. 온 국민이 성공 여부도 모르는 R&D만 쳐다보고 있으란 얘기나 다름없다. 이들에게는 경제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어떻게 되든, 파이로를 하든 안하든 중간저장시설, 고준위 방폐장은 필요한 것 아닌가. 국민이 무슨 바보도 아닌데 연구비 욕심 채우기에 혈안인 원전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정부의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도 빛이 바래졌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정작 정부조직개편안에서는 원전사업자, 원전진흥정책 등으로부터 독립시켜 놓은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집어넣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원자력계가 원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원전 연구에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국회가 문제 삼으면서 위원회는 국무총리 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태로 가뜩이나 높아진 원전 불신의 해소라는 과제는 출발부터 모양새가 뒤틀리고 말았다.

모호하고, 엇박자도 속출

그렇다면 다른 에너지 방향은 제대로 잡혔나하면 그것도 아니다. 신재생 중장기 목표는 재설정하는 것으로 넘겨졌다. ‘녹색’의 이명박정부가 2030년 11%로 제시했던 비중 목표를 줄인다는 건지 늘린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곳곳에서 엇박자도 속출한다. 밖에서는 선진국들조차 온실가스 감축을 뒤집고 있는 판에 박근혜정부는 국제사회에 약속했다는 감축 이행을 말한다. 이미 2015년 배출목표치를 넘어섰을 정도로 안이한 예측이었음이 들통났는데도 말이다. 유럽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배출권거래제 의 차질 없는 시행(2015년)을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선 정권에서 벌어진 해외 에너지·자원사업 손보기는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공기업에 끝도 없는 부채를 안기는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는 공염불이다. 말썽 많은 전력, 가스 등 에너지산업 구조개편도 중장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한다는 얘기뿐이다. 이 정부가 말하는 ‘중장기’는 임기 내인가 임기 후인가.

밖에서는 셰일가스다 뭐다 에너지 빅뱅이 한창이다. 에너지 상대가격 구조도 깡그리 바뀌고 있다. 그런데 안에서는 당장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력 예비율 22%를 내건 박근혜정부다. 이 정부의 에너지는 대체 무슨 색깔인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