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오프라 윈프리쇼 스튜디오는 패션쇼장으로 변했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튜닉(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넉넉한 여성용 블라우스)과 카프탄(셔츠 모양의 기다란 상의), 스팽글 장식이 있는 탱크톱(민소매 티셔츠), 시가렛 팬츠(담배처럼 가늘고 긴 바지) 등 새로운 스타일의 의상들이 등장했다. 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라고 토리버치를 소개했다.

오프라쇼가 나간 다음날 토리버치의 웹사이트는 8만명 넘게 접속했다. 쇼에서 선보인 튜닉 등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2004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토리버치는 오프라 윈프리쇼를 계기로 불과 1년 사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로 도약했다.

토리버치 최고경영자(CEO)인 토리 버치는 “토리버치의 튜닉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오프라가 자신의 쇼에서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다는 전화를 했을 때, 오빠들의 장난인 줄만 알았다”며 “그렇게 빨리 브랜드를 인정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셋 키우던 역사학도…그녀의 '영감 노트'…디자인의 틀을 깨다

○전업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

필라델피아 상류사회 출신으로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토리 로빈슨(토리 버치의 결혼 전 이름)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출신 쿠튀르 디자이너 조란의 어시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디자인, 홍보 등을 보조하며 패션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폴로랄프로렌과 베라왕, 로에베 등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했다. 베라왕에서 일할 때는 앨 고어 부통령의 장녀인 카레나 고어에게 결혼식 드레스를 입혔다. 1997년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한 유명인사들에게도 베라왕 옷을 협찬해 세계적으로 베라왕 브랜드를 알렸다.

베라왕에서 일하다 만난 사업가 크리스토퍼 버치와 1997년 결혼한 뒤 세 아들을 낳으면서 일을 그만뒀다. 어린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전업주부의 삶은 오래 가지 않았다. 버치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뉴스를 보다, 자신의 꿈을 좇아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라는 광고를 계속 보았다”며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광고가 나를 자극했다”고 회상했다.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오랜 고민 끝에 ‘옷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버치는 “어떤 옷을 만들어야 할까 생각하며 옷장을 보는데 가격대가 합리적이면서 잘 만들어진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제품을 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2004년 2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쓴 패션 브랜드 ‘토리버치’를 선보였다. 명품과 비슷한 품질에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갖췄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한 옷을 만드는 것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인 ‘매스티지’류 브랜드를 추구한 셈이다. 버치는 이를 위해 자수와 장식물, 프린트 등과 같은 디테일에 집중했다.

○역사학 전공, 디자인에 날개를 달다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노하우를 쌓았다. 사진과 예술작품, 건축물, 프린트 등 영감이 될 만한 모든 이미지를 모아 자신만의 디자인 영감을 위한 책으로 만들었다. 버치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며 “일반적인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이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토리버치의 스테디셀러인 ‘리버플랫슈즈’도 그렇게 탄생했다. 발레 슈즈 모양의 굽이 낮은 플랫슈즈는 흔한 제품이었다. 디자인도 모든 브랜드 제품이 비슷했다. 버치는 기존 플랫슈즈가 우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편하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는 착용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가죽과 고무 밑창을 사용하고 뒷꿈치에는 고무밴드를 달았다. 소비자들은 고무밴드 덕에 맞춤 신발처럼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기존에 작은 리본 정도로만 장식하던 발등 부분에 브랜드 로고를 메달 형태로 크게 부착해 개성도 살렸다. 버치는 이 발레슈즈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우아한 여성인 어머니의 이름 ‘리버’를 붙였다.

버치는 2008년 뉴욕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컵스와 마이클 코어스를 제치고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았다.

그는 미국 안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7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작해 현재 미국과 유럽, 중동,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 83개의 단독 매장,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백화점 매장과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독일 뮌헨과 중국 상하이, 멕시코 멕시코시티와 태국 방콕 등에도 신규 매장을 열 계획이다. 한국에도 2009년 진출해 서울 청담동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포함해 2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기존 의류와 가방에 집중하던 것에서 액세서리와 화장품 브랜드 등으로 사업 영역도 확장할 계획이다. 버치는 “올가을 미국의 세계적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와 새로운 향수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최근에는 2014년에 파슬과 함께 시계를 선보이기 위해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4년 버치의 아파트에서 시작한 토리버치는 연매출 8억달러(약 900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포브스는 지난해 토리 버치를 최고의 백만장자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성 사업가를 위한 재단도 운영

버치는 2009년 여성들에게 소규모 사업 자금을 대출해주고 기업가 자질에 대한 교육과 정보를 제공해주는 멘토링을 목적으로 ‘토리버치 재단’을 설립했다. 여성을 위한 재단은 버치의 오랜 꿈이었다. 버치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여성과 아이들을 돕는 재단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어떤 도움을 줬을 때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 끝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재단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리버치 재단은 악시온유에스에이(ACCION USA)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1만1000개 이상의 미국 내 작은 사업체에 500달러(약 57만원)에서 5만달러를 대출해주고 있다.

버치는 “여성은 가장 소중한 존재”라며 “재단의 목적은 여성 사업가들과 그들의 가족을 돕는 것으로 자선사업이 아니라 ‘역량 강화’ 사업이자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이 사업가와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