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 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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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값 급등 시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하도급사업자를 대표해 원사업자와 납품단가 조정 협상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
금까지는 원사업자와 하도급사업자 간 분쟁이 있을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대기업에 조정 신청만 할 수 있는데, 이에 더해 협의권까지 주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개정안은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협의를 신청하면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하거나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사실상 원사업자가 의무적으로 협의에 임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다.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 위임’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동안 원자재값이 폭등해도 대기업 등이 즉각 납품단가에 반영해주지 않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
한다. 을(乙)의 입장에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나서면 협상력이 커질 것이란 게 찬성 쪽 주장이다.
반대하는 쪽에선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원사업자의 상당수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발효하면 오히려 중소기업 간 분쟁만 조장할 것이란 주장이다. 납품단가 조정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져 기업의 생산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품 가격 하락속도가 빠른 정보기술(IT) 업계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가격 카르텔을 형성해 원사업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위임하는 방안을 두고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과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맞붙는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찬성 제조원가 올라도 납품단가 제자리…甲 횡포 맞서는 안전장치 역할
현명한 기업이라면 필요한 것을 만들어 쓰는 것과 사서 쓰는 것의 비용을 따져보고 내부 생산을 할 것인지, 외주 생산을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수직 거래 관계는 내부에서 만들어 쓰는 것보다 외부에서 사서 쓰는 것이 효율적일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하도급 거래, 대규모 유통사업자와 중소 제조업체 간 관계, 가맹본부와 가맹점사업자 간 관계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거래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거래에 의한 이익(gains from trade)을 추구한다는 기본적인 시장원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 수요의 독과점으로 인해 시장에 구조적 결함이 존재한다면, 교섭력이 큰 대기업이 거래의 규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하고 착취하려는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하도급 거래에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다.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당연히 거래의 자발성이 전제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종종 자발성에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거래 당사자 간에 교섭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자는 규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해 자기 몫을 극대화하거나 전속 거래를 강요한다. 시장원리에 입각해서 볼 때 거래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분배의 방식과 내용은 정부 개입보다는 거래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54% "납품단가 적정치 않아"…수직적 거래에 乙만 제살깎기
그러나 불완전한 계약, 불공정한 계약의 경우에는 정부가 하도급법 등을 통해 일정 부분 거래 관계에 개입하게 된다. 이런 시장 개입을 두고 반시장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기업과의 하도급 거래에서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값을 받기 어렵고 오히려 단가가 떨어져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원자재 가격은 대폭 상승했음에도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중소 제조업체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1년을 100으로 했을 때 최근 2년 동안 재료비, 노무비, 경비는 4.3~6.7% 증가한 반면 납품단가는 0.2~0.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중소 제조업체의 54%는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납품 중소기업 간의 무리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납품가격 인하 불가피”(32.4%)라는 답도 있었으나 “원자재 상승 요인이 있었으나 (대기업의) 가격 인상 동결 때문”(28.7%)이라는 답도 많았다.
원자재 가격 등 단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거래 단절을 우려해 납품단가 인상을 주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2009년 4월 원재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거래상 지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수급사업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에도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제도 보완이 일부 이뤄졌다.
2011년 6월 시행 이후 2년 동안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조정 신청 실적은 단 1건에 그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조합에 부여했으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는 해당 중소기업이 직접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 단절 등 보복을 감수하면서 일시적 이익을 위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1년 3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도입하면서 부대 의견으로 ‘제도 개선 2년 경과 후에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 도입을 우선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해 하도급법을 비롯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관련법에 대한 개정 작업이 추진돼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에 대한 협상권을 부여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개별 중소·하도급 기업이 갖지 못한 전문성과 정보력을 보완해 대기업·원사업자와 대등한 협상력 발휘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이는 원사업자가 수요독점(monopsony)에 따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을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단가조정협의권자를 중소기업협동조합으로 단일화하는 일종의 대항 카르텔을 형성해주자는 게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거래 당사자의 자발성을 중시해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묵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동조합의 협상 대리권을 계약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거나 담합의 소지를 들어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경쟁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으려면 기회의 균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적정한 조정은 中企 기살려…일자리 늘고 양극화 해소 기대
현재 하도급 거래 관행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고 있는지 반문해 보면 답은 명약관화해진다. 특히 대기업은 정보의 접근성이나 변호사 등과 같은 전문가의 조력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상황에서 적정한 납품단가 조정은 중소기업의 투자 여력을 늘리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촉진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세종 <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
반대 납품단가 인상 우려로…원사업자, 단기계약 선호할 것
최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하도급법 가운데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조항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원자재 값이 급등할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중소 납품업체를 대표해 대기업과 직접 납품단가 인상폭을 조정 협의할 수 있고,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것, 원사업자의 의무협의 규정을 포함하는 것은 중소납품업체들의 협상력을 강화시켜보겠다는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첫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경우 대기업보다는 오히려 중소기업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납품관계가 아니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거래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사업자의 상당수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품단가협의권 위임은 중소기업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를 보면 원사업자의 75%와 전체 종합건설업체 가운데 99%가 중소기업에 해당된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모두 중소기업일 경우 협동조합은 어느 한쪽만을 옹호할 수 없는 곤란한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가격 카르텔을 형성하면 합리적인 수준 이상의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할 수 있어 원사업자는 해외 아웃소싱을 선택하거나 수급기업을 수직통합해 중소기업의 일감과 고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적정한 조정은 中企 기살려…일자리 늘고 양극화 해소 기대
둘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경우 소비자 후생이 저하될 수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원사업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동의 납품중단 등의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합리적 수준 이상의 납품단가 인상은 최종재 가격에 반영되고 그 가격 상승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셋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경우 국내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납품단가협의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위임함으로써 수급사업자는 국내기업에 대해서는 납품단가 인상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으나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그 결과 외국기업에 비해 국내기업의 가격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될 게 분명하다.
넷째, 납품단가협의권은 하도급기업의 기술개발 유인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인 납품업체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단체협상을 통해 평균적인 가격을 획일적으로 적용받게 될 경우 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쟁의 유인은 사라진다. 단체협상 결과 기술력 있는 납품업체와 그렇지 못한 납품업체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경우 후자의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인 수급사업자들은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보다는 납품단가 협상에만 치중함으로써 납품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완성품의 품질저하를 야기해 원사업자의 경쟁력까지도 약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다섯째,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한 납품단가 협의는 납품업체 간 경쟁을 제한하는 카르텔에 해당될 수 있다. 카르텔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부당하게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제26조에서는 사업자단체의 가격카르텔을 금지하고 있다. 과거 레미콘이나 타이어를 제조하는 사업자 및 단체 등이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공동행위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한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에 비춰볼 때 하도급 업체가 아닌 다른 사업자나 단체들이 경영난이나 형평성을 주장하며 공동행위 예외 인정을 요구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中企 기술개발 유인 사라져…수출 경쟁력 약화될 수도
외국에서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독일 등에서는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 문제를 규제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고 분쟁 발생시 민사법에 따라 규율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하도급법이 있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납품단가 사후조정 협의제나 중소기업협동조합에 협의권 부여라는 법조항은 없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경쟁법 선진국들은 사업자 단체의 가격카르텔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납품단가 조정 규제는 계속 강화돼 왔다. 2009년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2011년 중소기업협동조합 조정신청권에 이어 올해 다시 중소기업협동조합 조정협의권 부여 등 1년이 멀다하고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수급사업자의 절반이 조정신청권과 협의의무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개정안을 도입해 산업계를 혼란에 빠트리기보다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납품단가 조정신청권 등 기존에 이미 마련된 제도의 정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납품단가 조정신청권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납품단가협의권 부여 등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용자와 개별노동자 사이에 내재된 협상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협상권을 위임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헌법적인 근거를 달리한다는 점 이외에도 협의권을 협동조합에 부여하기 이전에 비해 누구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방안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게 분명한 만큼 즉시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읽을 만한 자료
△하도급 거래규제 합리화 방안, 신석훈 (2012, 한국경제연구원)
△수·위탁기업 간 납품단가 결정의 문제점과 과제, 이병기·신석훈·강선민
(2010, 한국경제연구원)
△하도급법, 김홍석·구상모 (2010, 화산미디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
금까지는 원사업자와 하도급사업자 간 분쟁이 있을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대기업에 조정 신청만 할 수 있는데, 이에 더해 협의권까지 주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개정안은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협의를 신청하면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하거나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사실상 원사업자가 의무적으로 협의에 임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다.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 위임’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동안 원자재값이 폭등해도 대기업 등이 즉각 납품단가에 반영해주지 않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
한다. 을(乙)의 입장에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나서면 협상력이 커질 것이란 게 찬성 쪽 주장이다.
반대하는 쪽에선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원사업자의 상당수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발효하면 오히려 중소기업 간 분쟁만 조장할 것이란 주장이다. 납품단가 조정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져 기업의 생산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품 가격 하락속도가 빠른 정보기술(IT) 업계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가격 카르텔을 형성해 원사업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위임하는 방안을 두고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과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맞붙는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찬성 제조원가 올라도 납품단가 제자리…甲 횡포 맞서는 안전장치 역할
현명한 기업이라면 필요한 것을 만들어 쓰는 것과 사서 쓰는 것의 비용을 따져보고 내부 생산을 할 것인지, 외주 생산을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수직 거래 관계는 내부에서 만들어 쓰는 것보다 외부에서 사서 쓰는 것이 효율적일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 하도급 거래, 대규모 유통사업자와 중소 제조업체 간 관계, 가맹본부와 가맹점사업자 간 관계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거래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거래에 의한 이익(gains from trade)을 추구한다는 기본적인 시장원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 수요의 독과점으로 인해 시장에 구조적 결함이 존재한다면, 교섭력이 큰 대기업이 거래의 규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하고 착취하려는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하도급 거래에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다.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당연히 거래의 자발성이 전제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종종 자발성에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거래 당사자 간에 교섭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자는 규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해 자기 몫을 극대화하거나 전속 거래를 강요한다. 시장원리에 입각해서 볼 때 거래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분배의 방식과 내용은 정부 개입보다는 거래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54% "납품단가 적정치 않아"…수직적 거래에 乙만 제살깎기
그러나 불완전한 계약, 불공정한 계약의 경우에는 정부가 하도급법 등을 통해 일정 부분 거래 관계에 개입하게 된다. 이런 시장 개입을 두고 반시장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기업과의 하도급 거래에서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값을 받기 어렵고 오히려 단가가 떨어져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원자재 가격은 대폭 상승했음에도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중소 제조업체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1년을 100으로 했을 때 최근 2년 동안 재료비, 노무비, 경비는 4.3~6.7% 증가한 반면 납품단가는 0.2~0.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중소 제조업체의 54%는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납품 중소기업 간의 무리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납품가격 인하 불가피”(32.4%)라는 답도 있었으나 “원자재 상승 요인이 있었으나 (대기업의) 가격 인상 동결 때문”(28.7%)이라는 답도 많았다.
원자재 가격 등 단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거래 단절을 우려해 납품단가 인상을 주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2009년 4월 원재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거래상 지위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수급사업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에도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제도 보완이 일부 이뤄졌다.
2011년 6월 시행 이후 2년 동안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조정 신청 실적은 단 1건에 그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조합에 부여했으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는 해당 중소기업이 직접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 단절 등 보복을 감수하면서 일시적 이익을 위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1년 3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도입하면서 부대 의견으로 ‘제도 개선 2년 경과 후에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 도입을 우선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해 하도급법을 비롯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관련법에 대한 개정 작업이 추진돼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에 대한 협상권을 부여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개별 중소·하도급 기업이 갖지 못한 전문성과 정보력을 보완해 대기업·원사업자와 대등한 협상력 발휘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이는 원사업자가 수요독점(monopsony)에 따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상승을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단가조정협의권자를 중소기업협동조합으로 단일화하는 일종의 대항 카르텔을 형성해주자는 게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거래 당사자의 자발성을 중시해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묵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동조합의 협상 대리권을 계약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거나 담합의 소지를 들어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적어도 경쟁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으려면 기회의 균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적정한 조정은 中企 기살려…일자리 늘고 양극화 해소 기대
현재 하도급 거래 관행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고 있는지 반문해 보면 답은 명약관화해진다. 특히 대기업은 정보의 접근성이나 변호사 등과 같은 전문가의 조력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상황에서 적정한 납품단가 조정은 중소기업의 투자 여력을 늘리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촉진해 일자리 창출을 통한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세종 <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
반대 납품단가 인상 우려로…원사업자, 단기계약 선호할 것
최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하도급법 가운데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조항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원자재 값이 급등할 경우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중소 납품업체를 대표해 대기업과 직접 납품단가 인상폭을 조정 협의할 수 있고,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것, 원사업자의 의무협의 규정을 포함하는 것은 중소납품업체들의 협상력을 강화시켜보겠다는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첫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경우 대기업보다는 오히려 중소기업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납품관계가 아니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거래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사업자의 상당수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품단가협의권 위임은 중소기업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를 보면 원사업자의 75%와 전체 종합건설업체 가운데 99%가 중소기업에 해당된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모두 중소기업일 경우 협동조합은 어느 한쪽만을 옹호할 수 없는 곤란한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가격 카르텔을 형성하면 합리적인 수준 이상의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할 수 있어 원사업자는 해외 아웃소싱을 선택하거나 수급기업을 수직통합해 중소기업의 일감과 고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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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경우 소비자 후생이 저하될 수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원사업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공동의 납품중단 등의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합리적 수준 이상의 납품단가 인상은 최종재 가격에 반영되고 그 가격 상승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셋째,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경우 국내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납품단가협의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위임함으로써 수급사업자는 국내기업에 대해서는 납품단가 인상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으나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그 결과 외국기업에 비해 국내기업의 가격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될 게 분명하다.
넷째, 납품단가협의권은 하도급기업의 기술개발 유인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인 납품업체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단체협상을 통해 평균적인 가격을 획일적으로 적용받게 될 경우 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쟁의 유인은 사라진다. 단체협상 결과 기술력 있는 납품업체와 그렇지 못한 납품업체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경우 후자의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인 수급사업자들은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보다는 납품단가 협상에만 치중함으로써 납품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완성품의 품질저하를 야기해 원사업자의 경쟁력까지도 약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다섯째,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한 납품단가 협의는 납품업체 간 경쟁을 제한하는 카르텔에 해당될 수 있다. 카르텔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행 공정거래법 제19조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부당하게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제26조에서는 사업자단체의 가격카르텔을 금지하고 있다. 과거 레미콘이나 타이어를 제조하는 사업자 및 단체 등이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공동행위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한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에 비춰볼 때 하도급 업체가 아닌 다른 사업자나 단체들이 경영난이나 형평성을 주장하며 공동행위 예외 인정을 요구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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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독일 등에서는 대·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 문제를 규제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고 분쟁 발생시 민사법에 따라 규율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하도급법이 있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납품단가 사후조정 협의제나 중소기업협동조합에 협의권 부여라는 법조항은 없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경쟁법 선진국들은 사업자 단체의 가격카르텔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납품단가 조정 규제는 계속 강화돼 왔다. 2009년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2011년 중소기업협동조합 조정신청권에 이어 올해 다시 중소기업협동조합 조정협의권 부여 등 1년이 멀다하고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수급사업자의 절반이 조정신청권과 협의의무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다. 새로운 개정안을 도입해 산업계를 혼란에 빠트리기보다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납품단가 조정신청권 등 기존에 이미 마련된 제도의 정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납품단가 조정신청권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납품단가협의권 부여 등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용자와 개별노동자 사이에 내재된 협상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협상권을 위임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헌법적인 근거를 달리한다는 점 이외에도 협의권을 협동조합에 부여하기 이전에 비해 누구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의권을 위임하는 방안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게 분명한 만큼 즉시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읽을 만한 자료
△하도급 거래규제 합리화 방안, 신석훈 (2012, 한국경제연구원)
△수·위탁기업 간 납품단가 결정의 문제점과 과제, 이병기·신석훈·강선민
(2010, 한국경제연구원)
△하도급법, 김홍석·구상모 (2010, 화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