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4월 한파와 노처녀 혼수
봄이 무르익을 시기인데도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흩날린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앞두고 웬 눈인가. 4월10일 이후 서울에 눈이 내린 건 20년 만이라고 한다. 3년 전에도 ‘100년 만의 한파’ 소동이 있었으니 4월 추위가 어제오늘 일인 것은 아니다.

왜 이럴까. 기상청은 한반도 주변의 공기 흐름이 정체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동쪽 해상에 공기이동을 차단하는 고기압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빠져나가야 할 저기압이 북한 상공에서 정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극지방의 추운 공기 흐름이 강약을 반복하는 ‘북극진동’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 폭설과 추위가 잦아진 것 또한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한겨울에는 웬만한 혹한도 잘 견디다가 봄엔 조금만 추워도 심신이 움츠러든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거나 ‘봄추위가 장독 깬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다. 농부들이 ‘입춘 지나 눈이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며 한숨 짓는 것 역시 해동기에 비 대신 눈이 오면 곡식의 싹이 제대로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 기상 재해가 생기면 나라에서 전국의 노처녀 노총각들을 위로하고 혼수까지 마련해 결혼하도록 도와줬다. 관련 법도 상세하게 정해 놓았다. 1443년 사간원이 세종에게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다. 1472년엔 성종이 ‘전국 노총각·노처녀의 수를 모두 파악해서 혼수품을 주어 혼인시킬 것’을 지시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쌀·콩을 10섬씩, 사족(士族)이 아닌 경우엔 5섬씩을 혼수로 지급했다.

봄 추위뿐만 아니라 가뭄이 심할 때도 그랬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과년한 남녀를 결혼시키고 젊은 과부와 홀아비를 결합시키는 것이 기우제 때 필수 과제’라고 쓰여있다. 혼기를 놓친 ‘싱글’들에게 지원금까지 주면서 혼사를 주선했던 까닭이 재미있다. 이들의 원망과 한이 천지의 화기(和氣·기의 조화)를 손상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엊그제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결혼 적령기의 미혼남녀들이 결혼을 미루는 주된 이유는 경제 사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사유 1위도 경제였다. 가뜩이나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해킹 전쟁, 취업난, 불황 등으로 나라 전체가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살림을 잘 해서 경제를 일으켜주면 돈 없어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나 돈 때문에 임신을 기피하는 부부도 줄어들텐데…. 그러면 저출산 고민까지 해결되고 온국민이 꽃 피는 진짜 봄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눈발 속에서 여의도의 봄꽃축제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새삼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