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이 번역한 1940년판 '테스'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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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교수 작년 8월 발굴…고증작업 후 복간
"'테스' 번역은 일제 대동아주의 탈피 시도한 것"
"'테스' 번역은 일제 대동아주의 탈피 시도한 것"

최 교수는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국이나 북한 쪽에서나 자료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걸 확인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국내 모든 도서관의 자료를 뒤지고 중국에까지 연락을 하던 중 서강대 로욜라도서관에서 이 판본을 찾아냈다. 이후 방민호(서울대)·최유찬(연세대) 교수와 함께 복간을 준비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던 백석은 1939년 조선일보가 폐간되면서 분리된 출판사인 ‘조광사’에서 이 소설을 번역 출판했다. 최 교수가 발굴한 원본은 표지가 사라진 상태지만, 뒷면에 ‘조광사 1940년 9월 30일’이라는 간기와 당시 사장이었던 ‘발행인 방응모’라는 표기가 확실해 백석의 번역본임이 밝혀졌다.
이 판본을 현대어로 교정하는 데 참여한 방 교수는 “백석처럼 위대한 시인이 폐쇄적 동양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종합해 우리의 길을 찾아가려 시도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10여년 동안 국문학계에선 일제 말기 조선 문인들이 일본의 대동아주의(아시아가 단결해 서구문명에 맞서야 한다는 일본의 논리)를 내면화해 그대로 따랐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발굴로 일제 말기 조선 문학을 이처럼 일반화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방 교수는 “조선을 한국 문학의 뿌리가 아니라 일본 문학의 변방쯤으로 치부하는 국문학계 일부 주장을 반박하는 유력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석의 개인적 운명을 보여주는 것도 이 번역본의 의미 중 하나로 꼽힌다. 여러 번 결혼에 실패하고 애인 김자야와도 헤어진 백석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떠났다. 백석은 가족과 여러 명의 남자들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는 비극적 운명의 테스를 이런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해석이다. 유 교수는 “백석이 대표작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서 방랑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노래한 것은 이런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