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도 오차 없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있다. 북의 개성공단 폐쇄 엄포에 놀아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대응이 꼭 그렇다. 무엇보다 원칙이 안 보인다. 전술 전략은 더더욱 없다. 대통령과 행정부처가 그나마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를 조성하면 타협하고 지원하고, 또 위기를 조성하면 타협하고 지원하는 끝없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일단 상황인식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공단 10년 동안 반복돼 왔던 위기공식에 대한 반성으로 들린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그리고 대응책도 사실 이 말에 모두 들어있다.

북측은 개성공단 가동중단 방침을 밝힌 지 하루 만인 어제 일사불란하게 북측 근로자 5만4000명 전원의 출근을 막았다.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보여준 공식을 돌아보면 북은 공단 내 민간기업 자산의 몰수라든가 공장인력 강제추방 같은 추가 조치로 우리 정부에 압박수위를 높이며 대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려는 계산을 이미 해놨을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당장 우리 정부가 답답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 간 파국을 막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야권을 비롯해 일각에서 특사를 보내자느니, 당국 간 대화를 하자는 등의 목소리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남남갈등의 단골 메뉴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북측의 저급한 치킨게임에 말려드는 아둔한 한국 정치다.

정부가 할 일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개성공단을 만들면서 전 세계에 대고 약속했던 평화보장, 신변안전, 자유로운 기업활동에 대한 상호 합의를 따지는 것조차 우습게 된 상황에서 협상은 무슨 협상인가. 아직도 400명이나 남아 있는 근로자들을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설마 근로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은 결국 북의 도발을 막기 위해 근로자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박근혜정부는 지금 그런 일을 벌이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