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 핵전쟁 으름장에 대응하려면
북한은 최근 “우라늄 농축 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함께 2007년 10월 6자회담에서 가동 중단했던 5㎿ 흑연 감속로를 재가동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선언했다. 핵도발 위협의 본색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정전협정 폐기 선언에 이어 괌 타격이 가능한 ‘무수단’ 미사일을 동해안으로 옮기고, 평양 주재 외교관의 철수 권고와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협박 수위를 높이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유화정책으로 돈과 식량을 제공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낭만적이고도 이상적인 생각을 한다면 국가안보에 큰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북한의 흑연 감속로 재가동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첫째,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것이다. 1차 핵실험 때는 플루토늄을 사용한 핵무기 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새로 더 많은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 흑연 감속로를 재가동하는 것이다. 북한의 흑연 감속로는 한국의 경수로처럼 전력을 생산하는 상업용 원자로라기보다는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뽑는 원자로다. 일반적으로 우라늄의 핵을 중성자로 때리면 우라늄핵이 쪼개지면서 중성자가 2~3개 또 나오게 되는데 이 과정이 순식간에 이뤄지면 핵폭탄이 되는 것이고, 물이나 흑연 같은 감속재를 사용해 천천히 핵분열을 일으키게 하면 원자로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흑연 감속로를 사용하는 이유는 구식 원자로이기는 해도 물을 감속재로 쓰는 경수로보다 플루토늄을 더 많이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핵무기의 소형화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플루토늄 핵폭탄은 우라늄 핵폭탄과 달리 기폭장치가 복잡해 실험을 계속해 보아야 그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 플루토늄 핵폭탄의 무게를 줄여 미사일에 탑재하려면 내부에 있는 폭발렌즈의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이 과정도 핵실험을 여러 차례 해야 가능하다. 다량의 플루토늄이 필요한 까닭이다.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에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가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노동 미사일의 탄두 무게를 약 800㎏으로 추정할 때 1t 미만으로 무게를 줄여야 하는 것이 북한의 고뇌다.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2~4개 만들 수 있는 양으로 추정되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금 원자로를 재가동해 플루토늄을 확보하자는 계산이다.

세 번째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협상용 전략이다. 핵 위협을 고조시킴으로써 미국과 한국을 북한이 원하는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겠다는 것인데, 흑연 감속로 재가동은 북한이 늘 해왔던 벼랑끝 전술의 일환이다. 과거 같으면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먹혀 들었겠지만 이제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북한의 기만전술에 말려들지 않는다. 핵무기의 본질은 전쟁억지력 중 가장 효과적인 억지수단이다. 그래서 미국과 러시아처럼 핵무기를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적정량의 핵무기를 보유하며 서로간 핵 도발을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도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만약 북한이 핵 도발을 한다면 그 자체로 북한 정권은 자멸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김정은 정권의 불안이다. 아직 나이 어린 김정은의 권력은 불안하기 짝이 없고 군부를 장악해야 하는 김정은의 정치기반,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위협으로 돌려야 하는 정치환경이 핵 무장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북한이 흑연 감속로를 재가동한다는 선언을 지켜 보면서 북한은 현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앞으로 대북외교에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절대 휘말려서는 안될 것이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학 kmkim0828@hanmail.net>